어릴 때 일본에 살던 시절, 일본을 방문하신 작은 아빠께서 선물을 사주시겠다며 장난감 가게에 가서는 딱 하나 아무거나 고르라셨다. 당시 내 안에서 붐이었던 "공주님의 리본"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마법의 리본과 펜던트 목걸이를 최종 후보로 좁히고는, 아래 선전을 기억하며 리본을 선택했다. "변신"할 수 있을 기대에 부푼 채.


집에 오고나서 이 선전을 수백번을 따라해도 변신이 되지 않아서 무지 처운 기억이 난다. 내 딴에는 2D 만화가 아닌 실.제.인.물.이 나와서 분명히 변신을 했었기에 분명히 나도 변신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CG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던 그녀의 논리. 지금와서 선전을 다시보니 컴퓨터그래핌 유의문구도 나와있지 않다.


(나에게 CG는 엄청 큰 장벽이었던 것이, 만화나 쇼나 방송이 끝난 후 나오는 협찬 문구나, 모든 자막은 투명 실에 묶인 글자들을 사람들이 일일이 당겨서 화면에서 움직이게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상상도 했었다) 



↓ 광고에 속아서 산 마법의 리본



 또다른 후보였던 빨간색 돌맹이 팬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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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을 동경에서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살던 동네는 마포구 대흥동. 전화기는 안 방에 하나 거실에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고 동시에 수화기를 들으면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물론 수화기 넘어 인기적? 전자파 소리로 인해 완전 범죄는 불가능했겠지만) 장치가 가능하던 시절 이야기.


메모지에 적혀있는 번호로 일본에 국제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아빠랑 통화하기 위해서. 연결음 끝에 전화를 받은 건 어떤 한국말을 하는 여자였다. 


나 "여보세요... 혹시 거기 일본 아닌가요?"

여자 "여기 하와인데요..."


뭐 이런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잘못 걸었다며 사과하고 끊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금 메모지에 적힌 번호로 조심히 국제전화를 걸으니 드디어 연결된 아빠. 아빠하고의 통화가 끝난 후 당시 함께 살고있던 외할머니께 나는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처음에 전화를 잘못 걸었는데 세상에 하와이에 사는 한국 사람이 받았다? 너무 신기해 어떻게 또 우연히 한국사람이 또 받았을까?"


그 천진난만한 어린애의 말을 할머니는 어떻게 들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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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5 (定義) [정ː의]

    [명사]
    1.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 또는 그 뜻.
    2. <논리> 개념이 속하는 가장 가까운 유(類)를 들어 그것이 체계 가운데 차지하는 위치를 밝히고 다시 종...
    [유의어] 뜻매김,


얄팍하기 짝이 없는 퀴즈놀이나 심리테스트에서 부터 에니어그램, MBTI, 기질 테스트 등 심도있는 도구들에 이토록 관심이 가던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문득 떠오른 것 몇 가지.


어릴적 부터 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다 라고 나 자신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싶었다. 시원하고 깔끔하게.

나 자신의 성격에 관해서도 그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의견에 관해서도 난 늘 입지와 의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예나지금이나 나의 최대의 관심사가 "나"임에는 변함이 없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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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무렵, 나는 한 동안 도벽이 있었다. 처음 시작은 친구 지우개였던가. 그 이후 문방구에 있는 색칠놀이 책, 미술 용품 등으로 뻗어나갔다. 부모님께서 늘 사주실 만 하던 물건들이었는데..


근데 그것이 어느날 터졌다. 아빠랑 같이 백화점 나들이에 가던 날, 어린이용 물로 지워지는 메니큐어를 보고는 너무 갖고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 나같은 어린 아이는 이런 어른스러운 물건은 가지면 안돼 (지금 생각해보면 아동용인데..-_-;;) 라는 생각과, 우리 아빠는 이런 물건은 사주시지 않는 분이니 애초에 사달란 말을 끄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섞여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마음 한켠에서는, 사달라고 했다가 안된다는 말을 듣는게 너무 무서웠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이 딱히 아주 많이 엄하신 분들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부모님이 사주실 것 같은 물건만 사달라고 하는 경향이 나는 있었다. 


여튼 그렇게 두 병인가를 슬쩍하고, 내가 들고있던 가방에 넣고, 이 가방을 아빠에게 맡기지 않겠다라며 부자연스럽게 행동 한 덕에 나의 만행은 뽀록이 나버렸다. 백화점에 다시 끌고가 내가 훔친 메니큐어를 결재하고 하염없이 우는 날 끌고 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내가 보는 앞에서 그 병에 들어있던 내용물을 쓰레기통에 쏟아내시며 뭐라 하셨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비록 아빠가 돈을 내고 사온 물건이지만 너는 이걸 가질 자격이 없어" 스러운 멘트였으리라. 그렇게 나는 내 기억에는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체벌을 받았다. 긴 자로 손바닥 열 대 인가 스무 대 맞기.


그렇게 나는 지난 내 만행마저 불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우리 엄마도 엄청나게 우셨던 것 같다. 


1997년 11월로 기억하는 그 날. 나는 십계명을 어겼으니 지옥에 가겠구나 라는 생각과, 올 해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지 못하겠구나 라는 좌절감으로 겨울을 맞이했다. 물론 다시는 남의 물건을 다시는 다시는 훔치지 않겠다 다짐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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