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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을편지 2 2010.11.05

가을편지

from hur cosmos 2010. 11. 5. 01:14

룸메들이 내게 편지가 왔다는 걸 알려주며 "생일이냐?" 라 
농담을 던질 정도로, 웬일로, 내게 우편 (광고가 아닌!)이 세 통이 와있었다.

신발가게 쿠폰과, W오빠의 헬로윈 카드, 그리고 한국에서 온 편지.
어디서 살 수 있는 것인지 알 수도 없는 하얀색 기본 우편 봉투.
순간 돈뭉치라도 들어있나? 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편지 치고는 꽤 두툼한 봉투를 열고 나니
여러 감정들이 교차되기 시작함을 감지했다.

전에 자기가 보냈던 편지들이 환송된 것을 보고
내가 편지를 보낸 줄 알고 기뻐 펼쳐봤다는..
아파트 방 번호를 쓰지 않아서 얼마나 많은 편지를 환송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죽 그것이 기뻤으면 본인이 보낸 봉투임도 모르고 열어댔을까 - 라 느꼈던,
언젠가 들었던 그 이야기가 머리 속을 스쳤다.

'봉투 속에 넣을거면 좀 날짜 순서라도 맞추던가..'

굳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우선순위를 둬야할 정도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그는 그렇게 그런 묘하게 상식적이면서 기본적인 일에는 영 감이 없다.

5월 초부터 10월 중순에 걸쳐 그가 썼던 편지들..
절대 한장을 넘기지 않지만 열통에 가까운 편지들이 한거번에 보내진 것이다.

꾸역꾸역 모든 편지를 날짜순으로 놓고는
하나씩 조금은 빨리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편지지도 어쩜 이렇게 촌스럽기 그지없는 것들을 샀을까.
아직도 이런 촌스러운 걸 파는구나.'

어떻게 할 수 없다. 나는 이런 것이 그냥 보이는 사람이다.
그것을 입밖으로 내보내 코멘트를 다냐 안다냐는 나의 선택이기는 하나
보여버리는 것을 보지 않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어찌 보면 짧은 한 장이라는 편지지만,그 양에 놀라서 그런 걸까.. 그의 그 행동력에 새삼 놀랐다.
여태까지 내가 받은 편지들에 갑자기 열에 가까운 수를 더하게 된 동안 나는 고작 두통 썼나 안썼나.
마음 속으로는 읽어내리는 내내 답장을 쓰고 있는데.


내 마음 속에는 쓰다만 편지들이 너무 많다.
끝내 보내지 못하고 버려버린 편지들이..
실제로 보낸 편지들 보다 훨씬 많을 거다.

그리고 그 결과,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많은 인간관계가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렸다.

기록은 그때그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아는데
기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 말은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는 자판을 두드리지 못하고, 펜을 들지 못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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