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아, 아빠는 세상에서 수진이를 가장 사랑한단다."
7년전에 마지막으로 아빠를 만났을 때 들은 이 한 마디가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수진아, 아빠는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많이 사랑해. 미안하지만 수진이는 그 다음이야."
십여년 도 훨씬 전, 어쩌면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혹은 유치원 시절
우리 아빠는 분명히 저렇게 말했었기 때문이다.
2등에서 1등이 되었는데도 "전락"과 "상실"이라는 단어가 나를 지배했다.
어릴 적 대디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저 말이 전혀 섭섭하지 않았음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리고 더 커서 돌이켜보는 지금, 저것이 너무나도 옳은 소리였음을 확신한다.
아내를 대하는데에서도, 자식 앞에서 하는 말로써도.
이런 사소한 것을 기억하는 나 자신이 가끔은 정말로 측은해질 때가 있지만
더 기억해버리고, 조금 더 알아버리고, 깨달아버린 나 자신이
감당하고 수용해야 할 먹먹함 내지 책임이라 생각한다.
아래는 3년전에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내가 적어두었던 부분들.
그냥 문득문득 뒤적거려 찾아 읽곤 하는데, 더 손이 닿기 쉬운 이곳에도 남겨두려고..
====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엄마라는 사람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먹을 걸 많이 싸 와서가 아니라, 고릿한 냄새가 밴 헐렁한 잠옷을 입고 아무렇게나 내 앞에 앉아 있어서가 아니라... ... 뭐랄까, 격의 없는 것, 자신이 나에 대해 가지는 사랑이 하늘로부터 받은 천부적 권리임을 굳게 믿는 자의 당당함 같은 것, 그러니까 한때 같은 몸이었던 두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끈이 팔 년의 세월? 그거 별거 아니야 하는 듯 우리를 뛰어넘고 있었다. 팔 년만에 만난 모녀는 그렇게 모텔에서 쥐포를 구워 먹었다.
p.44
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 그건 대개 엄마가 불행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가 불화하는 집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도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건 엄마가 불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이 세상에서 엄마라는 종족의 힘은 얼마나 센지. 그리고 그렇게 힘이 센 종족이 얼마나 오래도록 제 힘이 얼마나 센지도 모른 채로 슬펐는지.
p. 57
p.227
그런데 혹시, 그러니까 어른이 되어도, 몸도 마음도 커다랗게 변하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결점을 가지고 그것을 드러내 보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인 거라면, 내가 어른들한테 했던 기대가 실은 완벽에 대한 요구였다면... ... 그렇다면 혹시, 나도 조금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어른 저 어른 흉보고 자라다가 막상 자기가 어른이 되면 그러니까, 외로워지는 걸까? 이제는 흉보고 탓할 사람도 없어져서?
p. 266
'hur cosmos' 카테고리의 다른 글
a sweet reminder (0) | 2011.08.19 |
---|---|
SlutWalk에 대한 개인적 견해 (0) | 2011.08.18 |
포스트 코스타 모임.. 후에 있던 일. (0) | 2011.07.28 |
군대가는 S군과... (0) | 2011.07.18 |
덧없는 것들 (0) | 2011.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