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날짜를 바꾸게 되었다. 아니 아직 바뀐 건 아니지만 그리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고 멘붕을 겪은 나는 감정적으로 진정하는데만 36시간 이상이 걸렸다. 마음이 가라앉고 이성을 되찾고 나니 내가 겪은 엄청난 무드스윙에 언제나처럼 한없이 부끄러워지지만 "soo! don't be embarrassed. what you are doing is difficult." 라는 메일 글귀에 나를 또 한번 진정시켜본다.
이번 일(?)로 인하여 내가 설치해놓고다니는 자기방어벽을 오랜만에 엿볼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하여 확인과 인증을 거듭 거듭 거듭 했었다. "정말로요? 정말 이 날 해도 괜찮아요? 정말 정말로요? 요러요러한 단점이 있는데요?" 그치만 결국에는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버렸다. 그로 인해 무너진 나의 자기방어의 벽은 어찌나 나를 속수무책으로 괴물화 시키던지. (결코 그날이 정월대보름이었어서가 아니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 했던가? 굳이 거창하게 국제관계학에서 현실주의(realism)라는 컨셉을 내놓지 않아도, 나를 보니 이것은 연약한 존재가 취하는 본능적 자세인갑디.
'감정적이다'라는 형용사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믿어왔다. 첫째는 감정 기복이 큰 것. 둘째로는 쉽게 그 감정을 일으키는 것. 두 번째 정의는 어쩌면 예민, 민감등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예민하다'는 것에는 또 두 가지 차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말 그대로 잘, 더 쉽게 무언가에 반응하는 것. 둘째로는 일일이 모든 것에 반응하는 것 -_-;
어떤 정의와 차원과 측면을 갖다 내세우든간에 나는 감정적이고 예민한 사람이다. 보편의 기준을 어따 둬야할지는 모르겠으나 남들보다 맘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다. 문제는 나 혼자 겪으면 될 그 피곤을 최측근에게 보너스까지 더해서 전이시켜버린다는 점? 행복을 나누면 배가 되고 고통을 나누면 반으로 줄지요^^ 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진리가 아니었다.
하나 그래도 다행인건 요 몇주 며칠 새 미친 듯이 우물파며 우울의 나락에서 취해있던 나의 현실감각이 조금 살아난 것? 내 딴엔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며 고집을 피워보지만, 진짜 현실적인 고민을 할 때와 우물 속에 있을 때의 괴리가 꽤 크다는 것을 비로서 조금씩 인정해본다. 성장과 성화의 과정은 멀고도 험하다.
# a day i was saved from a great piece of music as well
# spotify f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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