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여러 글들을 보며
깊이 공감만 하던 차에 저도 문득 끄적거리고 싶어졌어요.

물론 아직도 '나의 사랑 없음'에 괴로워하고는 있지만
저것을 향한 자각으로 올 상반기는 정말 심히도 앓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나의 사랑 없음'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보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지 않음'에 더 큰 자괴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문제를 인식했고, 그 문제의 원인도 인정을 했지만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 또한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고 싶지 않은 이 시덥지도 않은 고집은 
'죄성' 이라는 두 글자의 단어로 정리 해버려도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구하는 척 해도 …
결국 나는 내 맘대로 살고싶은 어쩔 수 없는 죄인이구나 싶었습니다.

--

사랑은 관계적 용어이기때문에
우리가 관계에서 문제에 봉착하거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
이 '사랑 없음'의 이슈가 도드라지게 보이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게다가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호 작용이잖아요.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도 대상이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라 상호작용이 필요하듯)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하나님을 믿는 것 즉 신앙 생활은 관계이며
영혼을 섬기는 것도 결국엔 관계 맺음 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말씀의 권위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그것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함은 역시 우리에게 있는 걸까요.
인간적인 관계조차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진리라 부르고 싶은) 옳은 소리을 나불거려도 소용 없더라고요. 호호.
이것이 포스트머더니즘의 위력인가.. 싶기도 하고요.

--

어찌 글을 쓰다보니 제가 말한 '관계'의 맥락이 섬기는 영혼들도 치중되버린 감이 있지만..
다른 관계에 관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들은 아직 생각 정리가 덜 되서..ㅎㅎㅎㅎ

제 넋두리의 요점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구할 수 있을까?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였습니다.


팀 블로그에 쓴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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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쩌다가 필을 좀 받아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라는 쇼프로를 몰아봤습니다.

아이들 (대개 한국 나이 5~7살의) 문제아들..
가령 특정 사물을 향한 지나친 애착증, 엄청난 떼쟁이들, 욕쟁이 폭력쟁이, etc..
한 마디로 부모 속 미~~~친듯이 썩이고 지.지.리.도 말 듣지 않는 애들을
소아정신과 시점으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가정을 개선해주는 프로입니다.

가정 개선이라 하는 이유는, 백의 백이십은 부모의 문제로 인해 애들이 망가져있기 때문이죠.
방송에서 여러가지 심리 치료를 도와주고, 건강한 육아법부터 옳바른 훈육 방법 등을 가르쳐줌으로
정말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문제아들이 금방 바뀌는 그런 프로에요.

이번 한 주.. 말씀 묵상은 안 하고 이 쇼프로를 통한 묵상을 했습니다. ㅎㅎ

이 방송을 보면 속이 시원해지는 이유는 
파탄났던 가정들이 힘을 모아 웃음을 회복해간다는 건 물론이거니, 
무엇보다 모든 문제에는 논리적인 이유/배후가 있다는 점에서 일 거에요.
한 아이가 어쩌다가 그 지경으로까지 망가졌는지.. 가 매회 명쾌하게 제시되요.
물론 아이여서 문제점을 알아내기 더 쉬운 걸 수도 있지만, 
어째서 부모도 그 지경까지 가야했는지도 꽤나 명쾌합니다.
부모들의 상처가 아이들에게 되물림 되는 케이스가 허다하지만요.
결국 부모가 바뀌니깐 아이도 바뀐다는 매회 같은 패턴을 보여줍니다.


크게 요 최근 몇달~1년 동안 제 안에 있는 모난 점들을 묵상(?) 하면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있는 원'죄성'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부분들..)
계속계속,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어떤 연유들이 지금의 제 자신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시기라 그런지
방송을 보다보면 가끔 우울+멍~ 해질 때가 있었어요.

문제의 아가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저런 부분이 있었는데..'
저런 옳바른(?) 훈육을 받았더라면 많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시덥잖은 미련 등등으로.

그렇게 따지고 보면, 옛날에 지금 시대처럼 육아에 관한 체계적인 방송/책이 넘쳐 흘렀던 것도 아니고
모난 사람들끼리 만나 모난 응어리를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분들이 대부분이셨을텐데 싶어
뭐 마음 급하게 먹을 것 있나 싶기도 하지만..
저는 빨리 저의 모난 부분에 대한 해결책? 치유책? 을 발견하고픈 마음이 큽니다.

제가 지난 한 해 동안 알게된 저의 죄성들과 모난 부분들을 그 분 앞에서 제대로 회복받지 못하면, 
앞으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더라고요.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야하는 운명인데.. 다 파탄낼 기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식으로 말하자면, 그 방송에 나오는 부모들처럼 될 게 훤~히 보이는거죠.

그런 이런저런 의미로,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 코스타를 향한 기대가 굉장히 커요.

시들시들해져있던 '영혼을 향한 마음'도 회복하고 싶고
무엇보다 좀 내적치유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계속 해왔고..

물론 이런 이벤트성 집회에 의지하여 기회주의적인 자세로 있으면 안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또 저는 어느 특정한 '계기' 없이는 
뭔가 initiate을 하거나, 변화를 위해 움직이지 못하는 종류의 사람이거든요.

더불어 새삼, 하나님께서 어째서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못들어간다 하셨는지를 알 것 같았어요.
어린 아이들이니깐 저렇게 쉽게 개선되는 것이였겠죠.
어린 아이의 저 맨들맨들(?)하고 유한 마음과
결국에는 부모의 사랑에 목말라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아가들.

몇살이나 살았다고 저는 이런 똥고집쟁이가 됐는지... 것 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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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아끼고 가까이 지내는 동생 한명이 있습니다.
3년째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있고 제자를 섬긴다는 것의 실천의 터가 되어주고 있는 친구에요.
그런데 그 아이가 최근에 아주 심각한 breakdown을 경험하고 있더군요.

묵상훈련 첫째치를 날려먹은 건 말할 것도 없고, 
본인 말로 의하면 육체적, 감정적,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렇게 보였어요.
(가족 일, 연애 일, 본인 신앙생활.. 삶의 거의 모든 면모에서 현재 어려움을 겪고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저희 지역 KBS 간사/코디 모임에서 나누어주고 중보기도를 하는 동안 내내
저는 저 자신 생각 투성이였습니다.

'(내가 경험해온 breakdown의 기준으로) 저 아이가 생각보다 많이 연약하구나'
'어째서 나를 찾아주지 않았을까' 
'아무리 힘들어도 묵상훈련은 했음 좋겠는데.. 나도 제일 힘들떄 했었는데..' 등등

누군가를 찾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일 수 있겠지만
나를 잘 아는 친구이기에, 일부로 나따위는 찾지 않았겠다 라는 생각이 지배를 했습니다.
(저는 KBS에서 만난 후배들 사이에서는 소위 말하는 좀 '빡센 언니'로 통하거든요.
좀 strict하고... 뭐 여러 이유로)

실제로 함께 있던 모임 내내, 저는 그 아이를 쳐다볼 수도 없었고 
심지어 따듯한 말 한마디 건내주지 못하고 도망치듯 그애에게서 빠져나왔어요.

그리고는 정말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은: 
'아아.. 내가 사랑할 수 있다고 자부하던 아이조차도 나의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구나'

그런 상황에 처한 친구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진 못하지만
그 친구 성격상, 강하게 푸쉬하기보다는 따듯한 위로의 말을 더 사랑으로 여기는 친구인데..
저라는 것은 마음 구석탱이에서 묵상훈련 운운하고 있으니 진ㄴㄴㄴㄴㄴ짜 글러먹은거죠. 


저는 어려서부터 일반적 외적 평판이 안좋았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늘 잘 하고, 늘 예의바르고, 늘 칭찬 받는 그런 사람이었죠.
하지만 이상하게 집구석에만 들어가면 천하의 버릇없는 계집아이가 되곤 했습니다.
우리 엄마께서는 "너는 정이 많지만, 참 사랑이 없는 차가운 사람이다" 
라는 말을 탄심섞인 진심으로 건내신 적이 있어요.

가까운 사람한테만 유독 못난이가 되는 건 저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사랑을 하지 못하는데, 도대체 누굴 사랑하겠다 헛소리를 하는건지..

오래전부터 자각은 해왔지만, 저 issue가 유독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어요.
저의 "사랑 없음" 을 완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시기입니다.
내가 사랑이 없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안그래도 작은 그릇인데
이렇게 바닥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박박 긁어내버리실 줄은 상상도 못했죠..

이 문제는 연애라는 것을 통해서는 더 영락없이 얄짤없이 명백ㅡ히 드러나줍니다.
아이쿠마..ㅜㅜㅜㅜ

'세계평화를 가져오지는 못할 망정 내 너 하나는 잘 섬길 수 있다' 라 자만하던 저의 오만이 드러나고.. 
나의 힘으로 할 수 있을거라 망각을 일삼던 저에게
시속 150km짜리 배구공이 뒷통수에 날라온 느낌이에요.
나를 버리지 않고서는 사랑의 흉내조차도 내기 힘들다는 것을 새삼 배우니.. 
글로 말고 몸으로 배우니 역시 힙드네요.

도대체 저의 lovelessness 라는 죄성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먹어야 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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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코스타에 참석한 2009년, 나는 엄청난 문화충격을 받았다. 주관적 기준으로 자기 인생이 힘들지 않다 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인디컨퍼런스에 참여한 과반수 이상의 이민자들의 삶이 내게는 지나치게 충격적이였던 것이다. 엘리트 출신이 난무하는 KBS와 유학생 출신 인구가 높은 교회에 참석하던 내게는 이민 온 1.5세들의 고충이 새롭고 낯설기만 했다. 재정적인 상황과 공부를 하는 여건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나는 인생을 너무 편히 살아온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내 딴에는 우리 학교에서는 내가 가난한 측에 속해서 기죽지 않고 살아남으려 바둥되며 허세부리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렇게 첫 코스타는 나의 시야를 확 터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2009년 그리고 2010년에 이어 코스타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준 인상은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붙잡는 그들의 대견함이였다. 광야에 내던져졌기때문에 붙잡을 것이 주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힘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그 안에서 성장해왔다는 친구들과 동생들이 너무, 너무나도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최근에 그 두번의 코스타를 통해 가장 많이 친해진 두 자매 (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근데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 내가 받은 인상은 사뭇 달라져있었다. 대견함은 여전히 바닥에 깔려있지만 새로 내가 느낀 것은 "아.. 예수를 진짜로 믿는다는 우리들도 아직은 응어리와 상처가 많이 남아있구나. 치유와 회복.. 성화의 과정은 정말 평생 끝나질 않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아마 이런 생각이 든 건 최근에 내 자신을 두고 저런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였을거다. 

지난 가을 학기부터 KBS에서는 로마서를 묵상했다. 그리고 지난 주에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olleh!) 로마서를 묵상하면서 내 생애 이토록 자주 그리고 깊이 나 자신을 죄인이라 고백한 적이 없었다.  그건 말씀에 비춰진 부분도 있을테고 지난 학기부터 유독 환경적으로 사람과 부대끼는 시간이 극적으로 늘어버렸기도 하고. 여튼 내가 실제로 감지해왔던 것 이상으로 나란 인간은 이리도 모나다는 걸 깨닫는 건 참.... 어찌 표형할 것도 없이 힘들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요즘은 더 힘들다. 지난 시간이 나의 죄인됨을 인정하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그 죄인된 내 모습을 갈아엎는 과정을 겪고있는 것 만 같아서. 요즘 새삼 회심이란 단어를 묵상하게 되기도 하고... 다시 새롭게 예수를 만나는 것 같은 설렘도 있고 그렇다.

여튼 요점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예수를 만나면 만날수록 직면하게 되는 굳은 살이 더 두꺼워지는 것 같다. 내가 발견하는 나의 죄는 횟수를 거듭할 수록 그 더러움이 더한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한층 더 깊은 내면의 문제를 접하게 되니깐 그런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지도 못한 쌩뚱맞은 곳에서 용서의 대상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그것이 나 자신일때도 있는데 그럴땐 어떻게 해야할지 참 당황하게 되곤 한다), 내가 본의 아니게 준 상처들이 수면 위에 떠오르기도 하고. 나날이 더 subtle 한 단계를 직면하게 된달까. 

어릴 적 인간의 무의식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생긴 이후, 심리학을 향한 관심이 참 많이 생겼었는데 과학적 접근은 아니지만.. 예수를 만나고 성경을 보니깐 나는 어느새 신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사상가, 그리고 이젠 심리학자가 되어간다. ㅋ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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