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diary'에 해당되는 글 34건

  1. 2016 2016.11.10
  2. amor fati 2014.12.11
  3. 굴욕의 날 2014.08.28
  4. 참으로 기나긴 겨울이로다. 2014.04.01
  5. doomsday 2012.12.15
  6. 고작 스물넷, 한계? 2012.12.07
  7. is winning that good? 2012.09.12
  8. tuesday after long weekend 2012.09.05
  9. 죄가 드러나는 그 곳 2012.08.07
  10. 본질을 추구하게 되는 때 2012.03.03

2016

from survival diary 2016. 11. 10. 01:29

너무 빡이 쳐서 뭐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비가 줄줄 내리는 가을날의 워싱턴 디씨의 아침.


무언가를 읽으면 읽을 수록, 나 자신을 토닥이려고 하면 할 수록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벽을 봐도 눈물이 나 견딜 수가 없다. 


늘쌍 생각해왔다. HRC는 DJT같은 새끼를 경쟁자로 두기엔 아까워도 너무 아깝다고. 처음부터 그녀를 지지해왔기에 "ㅋㄹㅌ은 아니지만 ㅌㄹㅍ는 더더욱 아니잖아" 라는 비교를 하던 사람들의 뒷통수를 다 후려치고싶었던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녀는 이따위 비교를 deserve하는 그릇이 아니라고. 


그녀가 목이 쉬도록 외치고 다녔던 것 처럼, 그녀는 모든 미국인 - 깡촌, 백인 사회, 꼴보수, 미국이란 나라의 방향성에서 외톨이가 되었다고 느끼는 자들의 -의 대통령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이상이자 목표이지. 그래 그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대통령을 뽑은 거다. 그것 뿐이다.


난 중계를 끝까지 보지 않고 힘들게 힘들게 잠이 들었다. 이걸 다 보고 지고 잠을 못자느니 지금이라도 자는게 낫겠다 생각이 들어서. 잠에서 깨면 이 악몽이 끝나있기를 울면서 기도하며 잠들었다.


난 이 나라에서 이민1세의 길을 걸어가고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경제 위기의 덕을 보아 취직을 했고 취업비자를 쉽게 받았다. 시민권 내지 영주권을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미시민권자하고의 결혼인데 그런 운마저 내게 돌아왔으니.


더 똑똑해지고싶다. 나의 잘남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싶다. (물론 그런 잘남따위 지금의 내겐 손톱만큼도 없다) 멋진 여자가 되고싶다. 약자를 위해, 억압받는 자를 위해 싸우고싶다. 내가 희생하고 손해보는 일을 감수하더라도. 그녀는 그런 의지에 불씨를 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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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만 draft를 써놓고 더 고치고 발행하려다가, 그런 날 따위는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footnote를 덧붙이고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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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 fati

from survival diary 2014. 12. 11. 23:04
이번 주 말씀을 보며 내가 얼마나 기도를 하지 않았나를 새삼 상기당했다. 한 때는 전지전능한 신에게 내 맘속 싶은 소원을 들어달라며 울며 며칠 몇 달 몇명을 기도하는 일도 있었지만, 이제는 신이 내게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전지전능함도 있음을 알기에 구하는 것을 멈추었다. 엄연히 내 상상과 계산을 능가하는 계획을 알아서 제 때에 펼치시겠지.

말씀을 보는데, 맥락을 무시 하지않고 보더라도 그냥 다짜고짜 구하라고 그럼 주실 거라고 하는 듯한 말씀이 너무 자주 나온다.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

당연히 언젠가는 주시겠지. 하며 내 딴에는 믿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궁극적인 믿음을 잘 실행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지금 이 순간 현실이 될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머리에선 제발 이루어졌으면.. 해피한 상상이 멈추질 않는다. 첫 월급은 몽땅 헌금에 바쳐도 아깝지 않겠다 라든가. 아냐 그건 막상 비현실적인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라든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나의 기도가 부족했던 걸까. 나의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
삶의 한 순간순간이 나름 생존의 연속이였는데 나의 간절함이 부족했다고?

한 때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으며 기도를 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주지 않을 하나님을 믿기에 기도를 하지 않는다. 어떤 말을 나열해도 핑계가 될 수 있겠지만 과연 내가 믿음이 없다고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예수 본인을 제외하고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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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의 날

from survival diary 2014. 8. 28. 13:20

내가 이렇게까지 강경대응+충격요법을 받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일을 못했었나? 아니면 이 회사는 이미 나에게 은혜를 많이 입히고있다는 입장을 취해왔으며 여태까지 나따위가 잘리지 않도록 보호막을 치고 있던 것을 내 신분이 바뀌자마자 거둬버린 것인가?

내 신분 문제가 해결되어 회사를 자유롭게 옮겨다닐 수 있는 상황이 되었어도 아직은 이곳이 나의 밥줄을 제공하고있고 나는 갑을병정중 정만도 못한 일개 외국인고용인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서럽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결국 나도 강하게 나갈 수 없다는 것이 비참하다. 짤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회사의 부조리와 나의 입장을 당당하게 주장하기엔 내 눈 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크다. ​
나는 아직 가장이니까.

어제 페이스북으로 감사 릴레이에 태그당했었는데 할지말지 고민 하면서도 감사제목을 머리 속에서 상상하려고 했다. 그 첫번 째가 "여차저차 하더라도 먹고 사는데 큰 불편함 없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였는데 하룻밤 사이 그딴것마저도 뒤흔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달으니 등골이 오싹해지며 감사의 맘이 날아갔다. 결국 나의 얕은 감사따의는 환경의 변화에 이렇게 쉡게 좌지우지되는 걸... 알았으니 릴레이같은 것에 거부감이 든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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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인생 그리고 신앙의 선배님의 어떤 소식을 접했다. 당사자에게는 고통스럽고 듣는 이들이 더 안타까워할. 그런 결정을 내릴 때 까지 겪으셨어야 했을 수많은 감정들과 과정들을 감히 내가 다 상상할 수 없어서, 그러나 어째서인지 무언가가 또 그려지는 듯 해 죽을 것만 같다. 하늘은 맑고 푸른데 오늘 내 마음은 종일 눈보라가 칠 것 같다. 이것마저 주의 인도하심이며 그의 주권 하에 이루어진 일이라 가슴으로 인정은 되는데 머리로는 되지 않는 묘한 날이다.


올 겨울은 왜 이토록 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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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msday

from survival diary 2012. 12. 15. 12:23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라며 내가 호흡하는 그 순간순간마저도 주께서 영광받으셨으면 좋겠다 했던 순수함은 어디갔나요.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이번 학기 캠퍼스에서의 모임.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던 유일한 고정 멤버하고의 성경공부. 이 친구의 존재가 너무 당연하고, 원래 우리의 관계는 가르치는이-가르침받는이가 아니라 상당히 동등한(...) 사이여서 오히려 내가 한발 짝 물러난 감이 내내 있었다 (遠慮気味?). 

성경공부때는 나도 한 고집하고,  너도 한 고집 하다보니 충돌하는 일도 적지 않아 있었다. 막상 같은 이야기를 다른 언어로 했던 것 뿐인데도 그 친구의 부족한 부분과 서투른 부분을 충분히 감싸주지 못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나보다는 캠퍼스를 향한 마음이 더 현저한 그 마음에 부응해주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캐어 대상이었는데, 정말 무엇 하나 해준 것 없이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버렸네. (도대체 나는 얼마나 많은 핑계들을 체비한 채로 사는 것일까.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거에 대한 핑계는 무대한으로 댈 수 있는 것 같다.)

캠퍼스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과, 그 친구를 향한 염치없음과, 더 같이 힘내지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이제야 내 가슴을 친다. 이런 눈물을 어찌나 기다렸던가.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되니 이제야 나를 괴롭힌다. 학기 내내 열과 정을 잃은 듯 한 내 모습이 참 낯설었는데 이제야 정상적(?) 현상이 나타났다.

근데 더 속상한 건 결국 이것도 일시적인 감상으로 끝나버릴 거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통곡을 하며 빌고 찢어지는 듯한 가슴을 안다가도, 나는 감정을 발산함과 동시에 그 결심을 날려버리는 고작 그정도인 여편네니까.. 

네 걱정을 하다 내 걱정으로 끝나는 이 패턴도 여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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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스물넷, 한계?

from survival diary 2012. 12. 7. 13:40

내 한계성에 부딪혀 백기들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젊지 않나 싶은데.. 내 자신이 이리도 심하게 control freak이었나 느낄 정도로 나의 유한함, 무능함, 의지 없음, 의욕 없음이 고스란히 노출당하고있다.


과연 이게 진정 나 한계점인 것인지, 아니면 몸을 사리기 위해 나도 몰래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서지를 않는다. 나는 조금 더 잘 할 수 있고, 조금 더 힘 쓸 수 있고, 아직 최선을 다한 것 같지 않은데.. (이것은 결코 겸손이 아니라 내가 내 그지같이 살고 있는 꼴을 알고 있는 것 뿐이다.)


근데 요 최근 몇달동안 내가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것은 "나는 조금 더 잘 할 수 있다" 생각했던 분량도 어쩌면 내 교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capacity는 처음부터 고작 이 정도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점.


지금 이 시점에서 내 한계를 인정하면 내가 loser가 될까봐, 내 나태를 "내 한계"라는 명목 아래 정당화시킬까봐 나는 계속계속 고집을 부렸는데, 이제는 마음 뿐 아니라 몸도 따라주지를 않는 걸 보아하니 무언가가 바뀌어야 하는 시기가 온 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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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winning that good?

from survival diary 2012. 9. 12. 21:24

대학교 신입생 시절, 처음 캠퍼스 성경공부에 나갔던 그때를 떠올려본다. 밖에서 뜨거운 금요일 밤을 보내고 있는 쟤네들을 보며, 나는 승리의식에 젖곤했다. 니네가 루저고, 진짜 위너는 나라고. 난 너네보다 더 뜨거운 금요일을 보냈다며.

모임 인도를 시작하고 몇년 간은, 내 묵상이 아무리 준비가 되있지 않았어도, 준비한 만큼 진행이 메끄럽지 않았어도, 소위 인도를 된통 "말아먹고"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여러번 때렸어도.. 끝마친 후에는 가슴이 너무 뜨거워지고는 쉽게 잠들지를 못하곤 했다.

오늘 저녁 나는, 참 귀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말씀이 너무 좋고, 함께 한 지체들이 사랑스럽고, 웃으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껴안고 모임을 맞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처럼 서럽고 외롭고 쓸쓸한 뒤끝은 처음이다. 그 이유는 물론 인간적인 이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있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홀로 위너가 되고싶지는 않다. 예수님이 있으니 혼자가 아니다는 클리셰는 갖다치우고. 함께 하고싶다. 숫자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건 알고있지만, 더 많은 이와 함께 하고싶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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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선망하며 우울에 잠긴다.


내가 갖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억울해서가 아니라,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로 인한 속상한 맘을 "괜찮아 괜찮아. 나는 하나님을 만났잖아.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잖아"라는 것으로 위로하고 또 위로해야한다 하는 나약함때문에.


그런데.. "그 사람들도 하나님을 만났잖아." 라는 말 한마디에 내가 세운 위로의 논리는 무너져내린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 무엇을 얻어야지 만족을 할까.
만족할 일도 없는 욕심을, 얻을 수도 없는 것을 향한 선망으로 인해 허비하는 나의 시간은 참 더디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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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구절 내지 표현을 가지고 미친듯이 시름했던 적이 있었다. 분명히 사랑은 관계적 용어인데, 분명히 대상이 필요한 것일텐데, 태초에 홀로 (차후 이게 살짝쿵 오류라는 걸 알게됐지만..ㅋ) 계셨던 하나님이 이것을 어떻게 하셨으며, 어떻게 그 존재 자체를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라는 고민.


이 궁금즘(?)이 약간 해결될 때 쯤, 나는 죄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성경적으로 우리 인간의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죄 또한 역시 관계적 용어인 샘이다.


20대 초중반이 되서야 인정하게 된 사실 하나는, 나는 굉장히 우울한 측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default status는 늘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며, 기쁘고 행복하기보다는 짜증과 우울이 조금 더 압도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외동으로 태어나서 자라고, 홀로 있는 시간이 익숙하고 또 긴 나는 이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쉴 새 없이 누군가와 소통해야되는 상황이 오기 전 까지는.


나도 내가 이렇게 기분이 늘 나쁜 사람인 줄 몰랐다. 이렇게 쉽게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인 줄도 몰랐다-_-; 그렇지만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서 자꾸 소통을 하다보니, 혼자 있을 땐 깨닫지도 못했던 나의 감정이 당연히 더 표현되어지고.. 그것으로 하여금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자주, 적나라하게 고질적인 나의 문제들이 폭로됨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나의 악함이라 표현할 수도, 약함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나의 깊고 깊은 죄성은, 관계 안에서 그 모습을 조금 더 선명히 드러낸다. 이것으로 하여금, 죄가 어째서 관계적 용어인지.. 우리의 신앙을 어째서 그리도 '관계'라는 측면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조금 더 알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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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돌이켜보며 삶의 이유를 나름 모색해보는 건 어렵지 않다.
아니, 사실 어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삶을 바라보고 비교하며
삶의 이유를 추구해보는 게 훨씬 어려운 것 같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나보다 못사는 사람들을 보며 (어디까지나 나만의 기준으로)
적지않은 위로를 받는 순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동정과 연민이 생겨나기 마련,
가령 실천으로 섬김이 옮겨지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그렇지만 나와 아주, 아주 많이 가까운 사람이
누가 봐도 패배자의 모습인 꼴을 보는 건
괴로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화려하거나 거추장스럽거나 비본질적인 것이 다 벗겨져
진짜 내 몸뚱아리 하나만 남아
이제야 비로써 참으로 본질 말고는 추구할 것이 없는 순간에..
우리에게 남는 큰 두 선택은
1. 그 삶을 져버리거나
2. 다시금 하나님을 만나거나
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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