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것이 지적하는 것보다 어렵고
사랑하는 것이 침묵하는 것보다 어렵다
침묵하는 것이 지적하는 것보다 어렵고
사랑하는 것이 침묵하는 것보다 어렵다
일어나자마자 관람한 스페인 vs 스위스 경기는
스페인의 역사적으로도 굴욕적인 패배로 끝나버렸고
이후 집을 알아보고, 사람들과 연락하는 과정에서
나는 엄청나게 많이 짜증과 답답함이 밀려와있던 상태였다.
그렇게 늘어질 때로 늘어진 채로
나는 티셔츠+카고반바지+안경+캡 패션의
두 대학원(졸업)생 오라버니들과의 저녁약속에 끼었다.
즐겁게 식사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난 후
성경공부 모임 내에서 해야되는 peer review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K오라버니와 단 둘이 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치만 역시나 감정적으로 날이 날이니 만큼..
나는 제3자들이 보면 오해할만한 그림을 만들어내고말았다.
울어버림으로 인하여. (ㅜㅜㅜㅜㅜㅜ)
여튼, 이 분을 나 개인적으로 형용하자면 "도 튼 사람" 내지 어른 이었다.
내 주변에야 이 분보다 나이 많은 사람, 나보다 윗 세대를 사신 분들,
혹은 그냥 사회적으로 보았을때 어른 인 사람들 투성이다만
유독 나는 저 어른이라는 단어를 이 사람을 향하여 쓰곤 한다.
뭔가 한걸음 뒤에 서서 많은 것을 수용하는 넓은 아량,
여러 상황과 여러 사람들을 슬기롭게 상대하는 센스,
배려와 매너, 적당히 삼가는 듯한 것이 몸에 밴 듯한 행동들.
장난기는 또 어찌나 많으신지 11년이라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어린 꼬맹이의 좋은 놀림감이 자주 되시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그 분 뒤의 스며들어있는 그의 진지함과 성숙함을 많이 동경했다.
그런 K오라버니와 꽤 가까이 지내고 자주 보고 지내긴 했으나
둘이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번 학기가 처음이고 오늘이 두번 째였다.
그러다 오늘,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몇배는 더 희안찬란하고 격동이 심한 그의 인생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받은 그의 인상들은 역시나 그의 풍부한 경험들에 근거했군 싶었다.
내가 실제로 "도가 튼 사람"이란 인상을 늘 지니고 있었다 고백하며 시작된 화제 끝에 그는,
"아마 내 나이에 안맞는 희노애락을 많이 겪어서 그럴거야" 라고 겸손히 대답해주었다.
더더군다나 "수진아 너는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우리 둘은 감정의 코드가 비슷한 것 같아"
라며 식사중에 스처지나가듯 하신 말에 공감을 표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겪어온 사건들 하나하나가 다 비슷할 순 없겠지만
어느 상황에 맞닥뜨렸을때 돌아가는 머리의 회전방식, 즉 사고방식이 꽤나 비슷한 듯 했다.
오늘 나는 대화 아닌 대화는 이틀에 걸처 바닥나버렸던 나의 기운과 자신감이 꽤 회복됐다.
성의없고, 그저 화제와 상황을 바꾸기 위한 위로나 격려의 말을 몹시 혐오하는 나지만
오늘 어제는 그 어떤 위로라도 받고싶었을 그런 상태에서 받은
진솔 플러스 한 언변 하시는 분의 격려는 몹시나 힘이 있었고, 따듯하고, 아렸다.
오빠가 아저씨여서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전 분명히 반해버렸을테고, 이 나쁜 남자로 인해 후엔 눈물을 흘리게 됐을 거에요ㅋㅋ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집으로 향해 돌아가던 중...
반짝거리는 반딧불이와 맞닥뜨려 순간 걸음을 주춤했다.
그러고나서 몇초 있다가 멀리서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축축하고 눅눅하고 찝찝한 공기를 들이키며 하늘을 처다보니,
저물어가는 하늘 위에 너무 예쁜 초승달이 떠있었다.
DC의 여름은 작년보다 쪼금 외롭지만 여전히 어딘가 굉장히 포근하고 굳건하다.
오라버니의 이곳에서 보낼 처음(?)이자 마지막(?) 여름이
뒤돌아봤을때 참 괜찮았다- 라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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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좋아하는 일본어 교수와 오랜만에 얘기를 나눴다.
드라마 얘기부터 시작해서 사생활까지 꽤나 넓은 분야로 수다를 떨곤 해
이분과 보내는 시간은 참 즐겁고 유익하고 시간이 후딱 날라가게 한다.
그치만 무엇보다 이 사람과 마주앉을 때마다 보게 되는
그의 교수직 내공과 프로 의식, 그리고 현실적인 분석 능력과 정직함은
스승과 제자를 관계를 떠나서, 인간으로써의 존경심을 품게 한다.
그런 사람과 오늘 고작 한두시간 대화를 나눈 것이
오랜만에 나 자신을 직면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만......
나의 4년의 대학생활은, 안타깝게도 후회와 미련 투성이여서
떠올리면 밀려오는 회의감으로 괴로워지기때문에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아니 가능하면 상기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렇지만 당장 능력과 기술이 필요한데
내가 지닌 건 아무것도 없어서 절망스럽고
그 책임은 자연스레 내가 허비해버린 시간으로 옮겨진다.
나는 겸손하지 못했고, 겁이 나 도전하지 못했고, 그 무엇보다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 뒤에 어떠한 타당한 이유가 버티고 있었던 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크나큰 죄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당시에, 죄를 죄인줄 모르고 지었을지언정
그 죄의 대가는 결코 나를 비켜가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새 지었던 수많은 죄의 대가가
이렇게 한거번에 나를 덮치고있는데
'살아남는 것 만으로도 벅찼다' 라는 말 외에는
내게 호소할 길이 없는 것이 참 아니꼽다.
이래서 결국 모르는 건 죄라는 거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이 짧은 인생길에
모르는 것이 내게 약이 된 적 따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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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 채로 하늘에 날개를 펼처
미숙한 놈이라며 바람은 비웃어
하지만 지금
가슴 속에서 끟어오르는 정열을
껍질 속에서 그린 모험을
날개의 힘으로 바꿔 하늘을 달린다
sanagi by POS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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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연금술사의 만화책 연재본 완결을 읽었다.
월간 연재로 108화니.. 실재 연재는 장장 9년 이상을 해온 것이다.
언제더라, 처음으로 애니화가 되고 한참 뜬 게 내가 고등학생일때고...
지금 종방을 향해 달려가고있는 하가렌 애니가 없었더라면
유학 온 이후로 85% 잘라내버린 만화를 향한 관심속에서
부활 할 가능성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뭐 잘 만든 만화야 사실 널리고 널렸지만
강철은 정말 내 취향에 알맞게
논리적 사고를 자극하게 만드는 스토리와 철학적 질문들.
일단 연금술이라는 툴 자체가 철학적으로 즐거운 소재이기도 하고
그 뒤에 캐릭터들 (정확히는 작가 본인)의 "진리"를 파헤치는 몸부림이 남 얘기 같지가 않아서..ㅎㅎ
그리고 무엇보다 엔딩이 참 무난한 것이 마음에 쏙 든다.
위화감따위 없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것이 모두가 똑같이 원하던 엔딩인 마냥 끝나주었다.
(물론 딱 하나 모자르다. 딱 하나... 좀더 찐한 로이와 리자의 러브스토리)
오랫동안 즐거움을 선사해줘서 고맙습니다, 아라카와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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