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from hur cosmos 2015. 11. 26. 02:04

어젯밤에 홀로 집에 있으면서 손 빨래를 하는 중 내 머리와 귓가에 "청춘"이란 노래가 계속 맴돌았다. 어차피 재미있게 볼 것을 알았으나 초반 나의 관심을 끌지못했던 응팔을 다 따라잡았기 때문이겠지. 호돌이 해에 태어나 팔팔이 드디어 이렇게나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서도 80년대말은 물론 90년대 초반 서울에 관한 기억이 전혀 없는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공감보다는 드라마가 파는 추억을 뭣모르고 사고는 흐뭇하게 관람하는 시청자 한 명일 뿐이었다. 옛 시절을 떠올리는 일이 아주 없던 건 아니지만 잠길 추억이 없는 나는 상대적으로 무덤덤하게 봤었다는 것이다.


근데 갑자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생각이 나서. 가사를 유심히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김필이 부르는 이 노래의 멜로디를 상상하는 것 만으로 그렇게 구슬플 수가 없었다. 


아빠 하면 이야기 보따리를 한 둘은 펼칠 수 있는 나지만, 그를 떠올리며 가장 먼저 수면 위에 오르는 나의 '감상'내지 '인상'은 부도덕하고 불성실하고 무책임했던 가장도 아니며, 말 그대로 찬란한 것을 잃어버린 인간이다. 


중학교인가, 여튼 십대 시절, 부모의 separation이 내 안은 물론 가족들 사이에서도 공식화 되기 조금 전, 일본에 홀로 있던 그는 좇기는 신세가 되었었다. 그 소식을 처음 접했던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의 생명도 건강도, 금전 상황도, 그를 그 상황으로 몰아간 자도 아니고 그가 버리고 떠나야 했던 집에 있는 물건들이었다. 아빠가 아끼던 음반들. 많지는 않았으나 늘 그자리에 있었던 책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쳤던 전자 피아노.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그리고 유년기 시절 추억은 대부분 아빠와 함께 쌓았기 때문에 내 안엔 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유전의 힘을 무시할 수 없겠으나 이건 교육의 힘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나에게 온갖 스포츠를 관람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준 것도, 컴퓨터를 다루는 법을 알려준 것도, 게임을 포함한 온갖 전자기기를 제공해준 것도, 나와 함께 TV를 봐준 것도, 파바로티를 알려주고 조용필과 송창식을 언급해준 것도 모두 모두 아빠였다. 고상한 취미 따위 가질 시간 없이 살아온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그가 내게 물려준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에서 송혜교가 맡았던 정준영이 자기 아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이에게 보들레르를 읽어주며 시처럼 인생을 살라 하셨던 교양 있는 아빠. 드라마 주인공의 아빠와 나의 아빠는 전혀 전혀 다른 인물들이지만 그 설명 속에서 내가 아빠를 향해 가진 자부심과 애정의 모양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최근에 오랜만에 아빠 이야기를 한 탓도 있겠지. 그분과의 대화로 나는 위로를 얻고, 그 분은 뭔가 단서를 찾는 듯한 인상이 있었다. 외동딸은 가진 아빠로서, 그리고 나와 MBTI 및 에니어그램 성향이 같은 아내 분은 둔 남편으로써. 그리고 응팔이란 드라마, 그리고 그 노래까지 겹쳐져 이 사단(?)이 난 게 아닌가 싶다.


아빠는 어쩌면 나만큼은 아까워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가 버릴 수 밖에 없던 그 많은 것들을.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런 것을 나름 즐기며 살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은? 그가 살아온 세월을 보며 남들은 욕을 하고 비난을 하고 혀를 치겠지만 나만큼은 적어도 나만큼은 그걸 인정해주진 못해도 이해하고 싶다는 건 자만일까. 그치만 그런 거창한 '평가'를 그의 입으로 들을 수 있을까? 우리 사이에 그런 시간이 허락되어 있을까? 그가 그걸 객관적으로 논할 수 있는 정신이 아직 있을까? 


지나가버린 세월을 두고 져버린 청춘을 두고 아빠는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나 있을까? 나 혼자 엉뚱한 걱정하는 거라고 자명되었음 좋겠다. 김창완은 이 노래를 아기 돌 때 지었단 이야기가 있던데, 그의 청춘은 얼마나 찬란했기에 싶다. 아 청춘의 무게가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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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ful prayer

from careless whisper 2015. 10. 28. 02:45

적절한 말과 위로보다는 필요한 말을 건네줄 수 있었으면 하고, 거기엔 나의 개인적 감정과 억한 심정이 섞이지 않기를 바라본다. 당장은 그 의미가 전달되지 않더라도, 상대를 서운하게 만들지라도, 내게 몇 남지 않은 끈을 나 스스로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상처받지 않는 마음을 내게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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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행위

from careless whisper 2015. 7. 31. 22:46


내가 생각하는 것을 글자로 옮겨주는 기능이 빨리 실용화 됐으면 하곤 한다. 꽤 오래전부터 바라왔던 것 같은데 아직도 안나오네? 그게 가능했다면 나의 생각을 더 잘 적어놓을 수 있을텐데. 나의 감정과 그때그때 느낀 것과 생각들을 더 저장하고싶은데, 흐르게 내비두지 않고 기록할 수 있을텐데.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정리든 사색이든 창작이든 간에 펜을 들거나 자판 앞에 앉아 직접 시간과 노동을 들이는 사람에게만 그 수고를 감안하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행위인 걸지도. 7/24/2015


아니면 대필을 고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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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


장강명 -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읽게된 계기가 조금 웃긴데, 하루 이틀의 간격을 두고 랜덤한 두 사람이 이 책을 언급하는 걸 보고 기억에 인풋되어버려서 다른 책을 주문하며 무료배송을 받귀 위해 막판에 장바구니에 넣고 구매하게 된 책. #이렇게_편하게_읽어내린_한국_소설은_처음이얏 #라고_평소_독서량이_매우_적은_내가_말한닷


읽는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 계나의 마음과 말에 '맞아 맞아'라며 맞장구를 치면서도 실상에서는 그녀의 주변인물들 처럼 반응을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변인들을 바라보는 계나의 관점에 감정 이입이 되지 않고 묘한 괴리감을 느낀 것은, 아마 나는 계나가 하는 고민을 몸소 해보기도 전에 그녀가 한 선택 위에 나 자신을 놨었기 때문 아닐까ㅋ 


계나가 이야기한 행복론에 동의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과연 그 끝에 있는 건 정말로 행복인가 싶다. 기회가 제공되는 환경과 애티튜드, 그리고 인생을 둘러싸는 수많은 시선들과 세계관들의 상관관계를 잠시나마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chaos 안에 허덕이는 청춘 여기 한 명 (새삼) 추가염.



김민정 - 엄마의 도쿄: a little about my mother (효형출판)


트위터를 계기로 알게된 도쿄에서 글 쓰며 육아하시는 분께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쓴 에세이. 출판된지 1년 가까이가 흘렀는데 이제서야 손에 넣어 읽게 되었다. 도쿄, 신주쿠, 부모의 애인, 심야 노동, 카페 르누아르 등 친숙한 키워드들을 이미 접했던지라 읽으면 공감이 많이 될 것 같단 생각을 했었다. 막상 책을 열어보니, 당연하게도... 작가와 작가의 엄마의 삶은 내가 경험한 것과는 무엇하나 닮은 구석이 없었지만, '만나서 너무 반갑다' 라는 인사를 건내고싶은 책이 되었다. 엄마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이라는 가벼운(?) 표현을 뛰어넘는 유대감이 형성되는 책인 것 같다.


(개인적 여담) 나에게 도쿄는 사실 아빠의 도시이다. 그만큼 일본에서 함께 보낸 시간과 기억들은 엄마보다는 친 아빠의 얼굴로 가득차있다. 신주쿠'구'에 살았던 우리는 책에서 언급된 곳곳을 누비고 다녔을 거다. 어릴 때이니 장소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진 않지만. 그도 그럴 것은, 우리 엄마는 밤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셨었으니까. 지금의 내가 해석하기에 도쿄는 우리 엄마에게 다시는 돌아가기 싫을 곳일 법도 한데, 우리 엄마는 종종 일본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곤 하셨다. 치안적으로 서울이 도쿄보다 더 무섭다 하셨을 땐 정말 이해가 안갔었다. (이제는 오히려 납득이 가지만..)


다 큰 어른이 되어 자신의 부모를, 그것도 한 여자가 자신의 엄마를 기억하고 묘사하는 방법은 이리 아릴 수 밖에 없는건가 싶어 서글퍼졌다. 책을 읽으며 자꾸 먹먹해질 수 밖에 없던 건, 책을 읽는 내내 나 또한 '우리 엄마의 도쿄'와 '우리 아빠의 도쿄'를 써내려가게 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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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따위 없는 직딩의 삶이다만, 캠퍼스를 기웃거리며 살다보면 그 사이클에 몸을 맡기게 되곤 한다. 내가 성경공부로 섬기는 캠퍼스가 방학을 한지 두 달정도가 됐다. 그말인즉슨 아침 출근길에 조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하는 qt라 읽고 성경 억지로 흝어보기를 제외하고는 말씀을 스스로 보는 행위를 쉰지도 그정도가 됐다는 것..ㅋ 


분기점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곧 있음 한 살 더 먹기 때문이 아니라... 이번 주말에 아마 내 삶에 좋은 파동을 던져줄 수양회를 앞두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제는 그만 놀고 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허구헌날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말씀을 보지 않는지에 대한 토로와 토론과 잔소리를 늘어놓고 사는 우리 부부인데 우리 남편만큼 진실하고 건설적이지 못하다, 확실히 나의 삶은.


노는 거 좋았다. 많이는 아니지만 책도 읽고, 만화책도 꽤 봤고, 게임도 좀 한 것 같고, 티비도 꽤 봤고. 시간이 남긴 하나보다. 스스로도 이야기했다. 말씀 안보니 넘 편하고 좋다고ㅋ 근데 얼마전 남편이 드디어 말씀 좀 보라고 지나가듯 한 마디 던졌네? 


네네. 슬슬 말씀이 보고싶어지네요.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내딛는데 이정도 시간이 필요해씀다. 두달 놀고 이 허함을 다시 직시하고 튠업 하고싶어진 거면 꽤 괜찮은거 아니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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