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는 닫습니다

from hur cosmos 2017. 12. 21. 23:29

치기어린 지난 20대, 특히 결혼전 싱글시절 20대의 고민을 나름 많이 털어냈던 블로그를 닫으려고 합니다.  

글을 쓰지 못하고, 글을 쓰고싶은 만큼 마음에 윤기 혹은 습기가 차지 않아 나에게는 노화가 이렇게 오는 것인가 매우 아파한 2017 하반기였습니다. 그치만 아주 아주 조금씩이지만 머리에 피가 돌고, 가슴에 피가 돌고, 마음에 피가 도는 것 같아요. 아픔이 기쁨이 자극이 되고 있어요. 다시 쓰고 싶어요. 허공에만 흥얼거리던 내 안에 있는 것들에게 모양을 주고싶어요. 


이 블로그에 남겨진 글들 중엔 더 이상 나 자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생각들도 많고 그래요. 그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지난 20대에게 작별하고 이제 진짜 30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사 준비를 합니다. 새로운 나를 맞기 위해 월동을 준비합니다. 어차피 구독자따위 많지 않은 곳임을 알지만 나 자신에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 새 거처가 궁금하면 따로 연락 주세요. 사실 아직 준비가 된 건 아니지만, 누가 놀러오고 싶어하는 지는 궁금하니까요. ㅎㅎ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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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from careless whisper 2017. 12. 19. 09:22

다시는 이곳에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직 이사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어딘가에라도 토로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휴면계좌를 풀었다. 

애도하는데에는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머릿속에 드는 생각들을 나열하고싶다. 두서없이. 아마도 예의를 갖출 여유따위는 없이.


우울한 연예인에게 묘한 선망과 동경과 동질감을 갖는 나다. 그들을 보며 미친듯이 오글아들어 하다가도 그들의 예술적 승화를 소비하는 짜릿한 맛이 있다. 


적어도 내가 접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는 지극히 4번스런 사람이었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머쓱해하면서도 기꺼이 숙명으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본인이 정해놓은 선에서만 망가지되 마지막 한 줄의 품위를 놓치 않는.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고 자신 때문에 기뻐하는. 


그가 속한 그룹도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그 무엇보다 한 명의 아티스트 그리고 디제이로써의 그를 너무 사랑했다. 

섣부른 위로에 치를 떠는 사람. 본인이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남에게 주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쓴 사람.

본인이 종종 내뱉던 사상이 정말 진실이란 듯 고스란히 그의 소품집 노래 가사에서 접하곤 했다. 


뮤즈 사건으로 시끄러울 때도 난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물론 그땐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도 훨씬 전이었지만 말이다. 

아직도 그가 대응한 방식에 찬사를 보내고싶다.

다른 크고 작은 논란거리들을 가지고 그의 존재 자체를 커버 치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반성할 줄 알고, 배울 줄 알고, 조심스럽고 배려심 깊은 인간이였다. 

멀리서 바라보는 나에게 있어선.


하루종일 나름의 추억팔이를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솔로곡들을 끊임 없이 들었고 중간중간에 그룹 대표곡들을 들었다. 일인극은 내가 고등학교때 지독히도 좋아했던 첫사랑을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였다. 그 첫사랑이 정리된지 이미 몇년이 지난 후에 나온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10대 시절의 아련함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감상에 빠지고 싶을 때 찾아듣곤 한다. Suit up은 가장 최근에 들은 그의 솔로곡이다. 첫 번째 정규의 마지막 곡. 이렇게 센슈얼한 곡을 내가 사랑하게 되다니. 그치만 인트로를 듣는 순간 홀려들어가듯이 반해버린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다. 


소품집도 들었다. 처음엔 듣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왜냐하면 덜 꾸며진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앨범이니까. 라디오에서 나랑 다른 시청자들이랑 나눈 이야기와 그의 철학과 그의 마음과 찰나의 감정들이 담겨져있으니까. 그치만 그를 기억하고 애도하고픈 사람들이 소품집만큼 찾아듣게 될 앨범이 또 있을까 싶다. 


나인언니 인스타에 그의 유서가 올라왔다. 처음 부고 소식을 접하고 기억난 사람 중 하나이다. 진짜 웃기다. 내가 그에 대해 무얼 안다고. 그래도 내가 떠오를 수 있는 그의 인맥들을 상상해봤었다. 


유서가 뜨기 전 아는 동생이랑 짧게 가슴 먹먹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마음이 종종 힘들고는 하는 동생. 공황이 오고는 해서 약을 먹는 동생. 


"아무도 제대로 몰라줬을거같다는게 너무 속상하네요" 라는 말에 내가 대답했다. "원래 우울감을 뿜던 분이라. 주변도 내성이 생겼던 게 아닐까 궁예질도 해보는데. 가끔 이렇게 가버린 사람들 보면 누가 어떻게 알아줘도 결국 가버리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들어서 또 나혼자 땅굴파며 먹먹해진다"


이렇게 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쉽게 내뱉은 말이지만. 질타받을 수 있는 표현을 썼을 수도 있지만. 나인언니가 올려준 그의 유서를 보니 어느 정도는 맞았던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결국 혼자였던 건 맞지. 그의 깊은 아픔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 따위는 없었겠지. 그치만 하나 다행이라 말할 수 있는 건, 도움을 꾸준히 청했었고 그의 속내를 최대한 주변과 나누려고 했고. 극복하려고 했고. 이겨내고싶어 했고. 단순히 노력해줘서 고맙다라기보단.. 혼자 끌어안아야 했었겠지만 그래도 혼자 하지 않으려고 끝까지 애 써줘서 고마워. 남은 사람들의 죄책감이 무슨 대수겠냐만은 죄책감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가줘서 고마워 이 다정한 사람아. 나인언니가 써준대로 혼자 있다가 가지 않아줘서 고마워. 그 시간을 더 지연시키지 못해서 너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고 아파할 사람들이 수두룩 할텐데, 넌 나름 그 아픔을 덜어주고 간 것만 같아. 그런 다정함이 더 아리고 아프다. 


정작 위로가 필요했던 건 자신이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모해가며 수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위로를 두고 가준 종현아. 


나도 태생적으로 행복을 잘 누리지 못하는 류의 사람이야. 행복하고싶어서 몸부림 치는 사람이야. 

내 인생의 목적은 행복도 자아를 찾는 것도 아니라며 나의 신앙을 가지고 자위하고는 하지만,

나도 결국엔 나 때문에 가장 많이 힘들어하고, 나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시간을 연명하는 류의 인간이야.


최근엔 우리 남편도 인정했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나에게는 있는 것 같다고. 내가 가진 아픔과 슬픔은 큰게 아닌 것 같은데도 이렇게 나를 조여. 나의 우울감을 증명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어. 나의 슬픔이 "슬픔"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 내 이야기를 부풀리곤 해. 엄청 부풀려놓아 이야기 한 후엔 혼자 쿨한 척 해. 그렇게 남들에게 걱정을 끼치며 살아. 그래서 없는 드라마도 만들게 돼. 


어쩌면 남들을 이해 시키기 위함이 아닌 것 같아. 나를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인 것 같아. 슬퍼할 만 한 것. 우울해할 만 한 건덕지를 찾아내는 거야. 이유없이 슬프고 아프고 우울할 수 있는데 말이야. 진짜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말이야. 그렇게 부풀리고 나면 고독함이 더 커져서 묘한 우월감과 자괴감이 동시에 찾아와. 더 고립된 느낌이 들고 더 이해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가는 기분이 들어. 혹시 너도 그랬니. 


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우리의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거라면 있는 힘껏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을 때려붓고싶다. 탓 하지 말아달라 했지만, 왜 떠났냐고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우리마저도 결국엔 괜찮다고 해줄 것만 같은 종현아. 우리가 아무리 붙들어도 왠지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났을 것 같다는 망측한 생각이 솔직히 들기도 해. 옳았다, 그럴만 했다 그런 말은 못하겠어. 그치만 오늘만큼은 네 아픔을 1/1000 정도는 아는 척 해도 될까. 이게 나 나름의 애도 방식이야. 이렇게라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너의 노래를, 목소리를, 네가 쓴 글을, 라이브 할 때마다 플랫 될 까봐 걱정되던 그 순간마저도 많이 좋아했어. 늘 동의한 건 아니였지만 너무 멋진 사람이었어 넌 나에게. 그런 우리의 기대가 너를 더 힘들게 했겠지 분명. 나를 대중을 만족시키지 못했어도 수고했어. 그래도 너는 훌륭했어. 애 많이 썼어. 너무 책임감 있게 살다 가버렸구나. 우리한텐 도망 쳐도 된다고, 내일로 미루면 어떠냐고 말해주었던 네가. 고생 많았지. 그래도 네 노래에 너 자신도 위로를 받는 순간이 있었다니까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보고싶을 거야. 성장하는 너를 보지 못해 아쉽지만. 함께 늙지 못해 허전하지만. 네가 산 청춘이 내 청춘을 떠올리게 해줄 거야. 청년의 네 삶이 많은 사람을 울고 웃고 달리게 만들어 줄거야. 나에게도 그래줬듯이.


안녕. 이젠 푹 쉬어. 애 많이 썼으니까 이젠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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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from survival diary 2016. 11. 10. 01:29

너무 빡이 쳐서 뭐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비가 줄줄 내리는 가을날의 워싱턴 디씨의 아침.


무언가를 읽으면 읽을 수록, 나 자신을 토닥이려고 하면 할 수록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벽을 봐도 눈물이 나 견딜 수가 없다. 


늘쌍 생각해왔다. HRC는 DJT같은 새끼를 경쟁자로 두기엔 아까워도 너무 아깝다고. 처음부터 그녀를 지지해왔기에 "ㅋㄹㅌ은 아니지만 ㅌㄹㅍ는 더더욱 아니잖아" 라는 비교를 하던 사람들의 뒷통수를 다 후려치고싶었던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녀는 이따위 비교를 deserve하는 그릇이 아니라고. 


그녀가 목이 쉬도록 외치고 다녔던 것 처럼, 그녀는 모든 미국인 - 깡촌, 백인 사회, 꼴보수, 미국이란 나라의 방향성에서 외톨이가 되었다고 느끼는 자들의 -의 대통령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이상이자 목표이지. 그래 그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대통령을 뽑은 거다. 그것 뿐이다.


난 중계를 끝까지 보지 않고 힘들게 힘들게 잠이 들었다. 이걸 다 보고 지고 잠을 못자느니 지금이라도 자는게 낫겠다 생각이 들어서. 잠에서 깨면 이 악몽이 끝나있기를 울면서 기도하며 잠들었다.


난 이 나라에서 이민1세의 길을 걸어가고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경제 위기의 덕을 보아 취직을 했고 취업비자를 쉽게 받았다. 시민권 내지 영주권을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미시민권자하고의 결혼인데 그런 운마저 내게 돌아왔으니.


더 똑똑해지고싶다. 나의 잘남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싶다. (물론 그런 잘남따위 지금의 내겐 손톱만큼도 없다) 멋진 여자가 되고싶다. 약자를 위해, 억압받는 자를 위해 싸우고싶다. 내가 희생하고 손해보는 일을 감수하더라도. 그녀는 그런 의지에 불씨를 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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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만 draft를 써놓고 더 고치고 발행하려다가, 그런 날 따위는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footnote를 덧붙이고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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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싫어

from very moment 2016. 7. 16. 05:46

완전 싫어. 매일 다른 입고 오는 것도 싫고. 기사가 열어주는  타고 뒷자석에서 내리는 것도 싫고, 구김새없이 환한거 그게 제일 싫어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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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가지고 다니는 usb속에 들어있던 노트.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이건 아마 상속자들에서 박신혜가 크리스탈을 향해 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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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6

from hur cosmos 2016. 4. 19. 03:40

열달 넘게 준비해온 여행을 다녀왔다. 내 첫 유럽여행이고, 내 첫 장기여행이고 신혼여행으로 간 칸쿤을 제외하고는 첫 해외여행이다. (물론 일본, 미국, 한국은 제외)


여행 끝무렵 그리고 다녀오고나서의 일상은 엉망진창이고 울고싶은 일 투성이지만 하나 긍정적인 변화가 내게 생겼다면 다시 무언가를 끄적거리고싶은 욕구가 약간은 회복되었다는 것. 결국 이 욕구라는 것은 새로운 input이 내 사고와 감정을 trigger해야지만 튀어올라오는 것일텐데, 그간 내가 새로운 input을 무의식중으로 거부해왔었나? 싶을 정도로 넘쳐흐르는 생각과 감정의 호수 속에서 지난 한 주를 살았다. 물론 그 짧은 시기에 여러 사건사고도 있었다만.


끄적거리고싶은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별개지만 어찌됐든 휴먼계좌로 돌아가있던 티스토리에 다시 로그인은 했으니, we'll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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