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한적 연단

from survival diary 2010. 8. 19. 10:29

유대 민중들이 구하고 기다렸던 구원과
예수가 실제로 가지고 온 구원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음을 알기에
우리가 어떤 것을 구해야하는지
무엇이 우리가 품어야 할 옳바른 소망인지를 알기에
더 기도를 하지 못하겠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를 읊으며
참된 천국은 고통 속에도 있을 수 있다며
지금의 "여러운 상황"이 지속될거라 저주를 할 수도 없으며
하나님을 믿으면 무조건 지금 처해있는 그 세속적 억압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어디가 당신의 바닥인지 나는 더 이상 알고싶지 않다
라고 언젠가 부르짖던 나의 탄식이 뇌리를 스친다.
정녕 이 상황에 끝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모세나 요셉이 겪었던 유기한적 연단이 아니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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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했으니 선택하고 서게 된 길이나
분명 이 곳에서 나름의 뜻을 품고 계시리라 믿었고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어떤 결과를 보여주실지
앞으로의 항로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있으니
당장은 괴롭고 외로워도 나름 기쁜 마음으로 있다.

그러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측은히 여겨주시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거북하다.
그것은 엄연한 오해이기때문에.

나도 큰 소리 뻥뻥 치고싶다.
그리고 아마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그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이리도 오래 비바람을 모시는 것일까.
조금만 더 겸손하라고.
조금만 더 드라마틱한 하나님을 만나보라고.?

집에 전기가 끊겨 전에 살던 친구집으로 혼자 피신을 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회복이 될지 모르겠단 생각과
아침부터 내려준 비로 인해 내 스케쥴이 또 다시 변동된 사실이
오늘의 나를 종일 우울하게 만들고있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덧붙여 5,6년만에 아빠와 통화까지 했으니..
더더군다나 간코수양회 공동체 놀이 준비할 생각까지 하니 머리가 터질 지경.

오늘은 여러가지 감상에 젖어있으라 예비하신 날로만 느껴진다.
저 우중충한 하늘을 보아하니 그 생각은 더 강하게만 든다.

김탁구도 따라잡았고 오랜만에 gtown cupcake까지 사먹으며
내 자신을 힘껏 달래보려 했것만, 아무래도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집에 돌아가긴 가야하는데, 가고픈 맘이 발톱 때만큼도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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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관적 현실주의는 사실
나의 지나친 이상주의때문에 생겨났다고 하는 건
한낱 변명에 불과한 것일까

가지고있는 이상이 너무 높고 완벽하고 고귀한 것이라
애당초 포기하고 저 바닥까지 기준치가 내려온 것이라 한다면
도저히 이 세상에는 희망과 구원이 없어
나의 작은 손따위 쓸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마저 구차한 변명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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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자의 최선

from survival diary 2010. 8. 8. 13:03

옳지 않은 것을 증오하고
비합리적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나.

남들에게는 그 엄격한 잣대를 갖다대어 
정죄와 비판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정작 내 자신에게는 얼마나 무르고 관대한지
그 모순에 역겨움을 느낄 때가 오곤 한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내 뜨거운 화잉을 맞는 것일지언정
그것이 숨통을 트기 위한 방법인데 어쩔꼬.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열심히 구하면
쉽게 그리고 빨리 변화될 수 있을 줄 알았나보다.
동기가 잘못됐던건 간에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간에
내가 이 여정을 만만하게 봤음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어쩔 수 없다.
이게 지금의 나의 최선의 방식이고
이것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면 돌아서는 수 밖에.

야속하다 욕 먹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어쩌면 내가 최선이라 부르는 이것마저도 
단순히는 책임 유기일 수 있으니.

이것이 정녕 사랑이라면
내 기꺼이 변해볼터니
이 길에 작은 빛 하나만 비춰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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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my imagination

from survival diary 2010. 8. 5. 23:51

우리의 수많은 단골멘트 중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하셨다" 가 있다.
이런 간증은 주로, 우리가 한 어려움을 직면하고는, 그것을 두고 기도 하다가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주셨는지를 경험하고 나오고는 한다.

흔해빠진 것으로 인하여 자존심을 많이 상해하는 나 이지만
특히 지금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저 멘트는
주를 영접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저 말을 난발한다는 것은 즉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를 여러번 겅험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즉 우리는 보잘 것도 없는 우리의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
이래저래 내 갈 길을 계획했다는 소리가 될 것이다.

나를 포함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분은 모든 것을 뛰어넘으시는 분이 분명히 고백하면서
막상 우리의 삶 속에서는 "나의 설계도"를 구상하느냐 바쁘다.

여튼 그렇기 때문에 반전쟁이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오나보다.
난 근데 이런 모습 싫지 않아...ㅋㅋㅋ

단지 꼭 모든 문제 해결이 반전을 통해 이뤄지지만은 않는다는 것.
그러면 참 해피엔딩 룰루랄라 일테지만
우리가 차마 상상하지도 못했던 문제 제공을 하실 때도 있으니
이것이 정말로 환장할 노릇인 거다.

최악을 상상해두는 건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타격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함.
최고를 상상해놓고 잊으려고 노력하는 건 그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주기를 바라는 마음.
나의 어설픈 믿음과 자기방어의 실체다 이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게 무서워서 기도하지 않는다 라는 핑계가
정말 유치찬란뽕짝브루스를 달린다는 것을 앎에도 불과하고
나는 내 자신을 지나치게 사모해서 이렇게도 자기방어에만 에너지를 쏫는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십시오"

아버지의 뜻을 고대하며 그 뜻대로 하시라는 고백을 우리는 너무 쉽게 하는 것 아닐까 싶다.
물론 그런 고백 하나하나가 다 거짓말이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저 말씀을 하신 분의 진실성과 간절함에 비교했을 때... 말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저건 진짜 초고수의 맨트다.
차마 내가 입에 담기에도 너무 엄숙한.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내 표현의.. 수많은 어설픈 믿음 소유자들과 같은 마음으로 속삭여본다.
"내가 차마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인도해주세요."
물론, 중요한 것은 '인도해주세요' 안에 내포되어있는 애교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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