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무렵, 나는 한 동안 도벽이 있었다. 처음 시작은 친구 지우개였던가. 그 이후 문방구에 있는 색칠놀이 책, 미술 용품 등으로 뻗어나갔다. 부모님께서 늘 사주실 만 하던 물건들이었는데..


근데 그것이 어느날 터졌다. 아빠랑 같이 백화점 나들이에 가던 날, 어린이용 물로 지워지는 메니큐어를 보고는 너무 갖고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 나같은 어린 아이는 이런 어른스러운 물건은 가지면 안돼 (지금 생각해보면 아동용인데..-_-;;) 라는 생각과, 우리 아빠는 이런 물건은 사주시지 않는 분이니 애초에 사달란 말을 끄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섞여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마음 한켠에서는, 사달라고 했다가 안된다는 말을 듣는게 너무 무서웠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이 딱히 아주 많이 엄하신 분들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부모님이 사주실 것 같은 물건만 사달라고 하는 경향이 나는 있었다. 


여튼 그렇게 두 병인가를 슬쩍하고, 내가 들고있던 가방에 넣고, 이 가방을 아빠에게 맡기지 않겠다라며 부자연스럽게 행동 한 덕에 나의 만행은 뽀록이 나버렸다. 백화점에 다시 끌고가 내가 훔친 메니큐어를 결재하고 하염없이 우는 날 끌고 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내가 보는 앞에서 그 병에 들어있던 내용물을 쓰레기통에 쏟아내시며 뭐라 하셨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비록 아빠가 돈을 내고 사온 물건이지만 너는 이걸 가질 자격이 없어" 스러운 멘트였으리라. 그렇게 나는 내 기억에는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체벌을 받았다. 긴 자로 손바닥 열 대 인가 스무 대 맞기.


그렇게 나는 지난 내 만행마저 불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우리 엄마도 엄청나게 우셨던 것 같다. 


1997년 11월로 기억하는 그 날. 나는 십계명을 어겼으니 지옥에 가겠구나 라는 생각과, 올 해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지 못하겠구나 라는 좌절감으로 겨울을 맞이했다. 물론 다시는 남의 물건을 다시는 다시는 훔치지 않겠다 다짐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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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인생 그리고 신앙의 선배님의 어떤 소식을 접했다. 당사자에게는 고통스럽고 듣는 이들이 더 안타까워할. 그런 결정을 내릴 때 까지 겪으셨어야 했을 수많은 감정들과 과정들을 감히 내가 다 상상할 수 없어서, 그러나 어째서인지 무언가가 또 그려지는 듯 해 죽을 것만 같다. 하늘은 맑고 푸른데 오늘 내 마음은 종일 눈보라가 칠 것 같다. 이것마저 주의 인도하심이며 그의 주권 하에 이루어진 일이라 가슴으로 인정은 되는데 머리로는 되지 않는 묘한 날이다.


올 겨울은 왜 이토록 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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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표현하고싶은데, 그나마도 그러기 위해 내가 사용하는 도구는 '언어'였던 것 같은데. 내 안에 낱말들이 고갈되어버린 것만 같다. 혹은 중2병 시기를 벗어내며 내던져버린 감상이 고갈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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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여년의 미국생활 동안 서울과 디씨를 오가며 일본을 경유한 확률은 80%에 달했을 거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일본을 방문 목적으로 다녀온 것이 2004년 여름이니 2013년이 땡하고 시작하자마자 다녀온 일본 여행은 나를 8여년만에 나리타 공항 밖으로 나오게 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이 여행이 특별했던 것은 일본여행이라는 그럴싸한 딱지 뒤에 붙은 상견례라는 목적. 이유야 거두절미하고 이런 저런 사정과 상황들로 인하여 한국과 미국의 중간지(응?)에 있는 일본에서 가족 대 상봉을 이루게 되었다. 저가로 다녀올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모색하던 중 우리 가족에게는 생전 처음으로 일본 패키지여행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일본에 더 머물고 싶었던 난 패키지로 있던 3박4일에 몇 박의 자유여행을 덧붙이고 다녀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인천에서 일본으로 출발하는 날 이례적인 급채+몸살에 걸려 공항에서 비싼 약 사먹고. (그래도 그 사이 면세 주문했던 내 미러리스 카메라를 픽업하고♥♥♥♥) 우리 비행기는 인천->시즈오카 행 OZ126편. 두 시간밖에 안되는 주제에 기내식 나오는 비행편을 너무 오랜만에 경험해서 감격이... 라고 할 것도 없이 밥도 제대로 못먹어 난 병자 행세를 해야하는게 어찌나 서럽던지. (아시아나는 근 15년 이상은 안탔던 것 같다. 혹시 처음인가?!) 일본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빡센 스케줄에 틈틈이 껴있는 투어관광용 below average 식사도 손을 못댄 채 첫날을 보냈다. 아무리 빌로우애버리지여도 일본에서의 식사이니 나에게는 기본 B는 받는 식사였을턴데... 


여튼 그래서 첫날 점심 시즈오카에 도착해서 다도 경험, 기모노 입어보기(우리 가족은 쿨하게 패스) 등등의 잡다한 액티비티는 몸의 기운과 어색함을 이기지 못한 나에게 사진 기록으로 남은 것이 없다. 어색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이 시점 멤버가: 나, 우리 부모님, 남편 부모님, 남편 남동생. 우리의 패키지는 첫날부터 인천->시즈오카->동경이라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는데 당시 피앙세이시던 그는 미국발이었기 때문에 혼자 동경에서 중간 합류를 해야했다.


아무리 상견례 여행이라지만 공항에서 양가 부모의 첫만남을 행사할 수 는 없기에 일본 출국 전날 서울에서 따로 봬 인사도 드리고 차 한잔 하는 예비 상견례를 치루기는 했으나.. 한 마디로 나 혼자 어색함과 긴장을 이기지 못해 병까지 나 쩔쩔 매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피앙세가 이토록 보고싶고 걱정되던 적이 있던가. 허허.


더군데나 한국에서 출발해 시즈오카를 걸쳐 관광을 소화한 후 동경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는 우리를, 혼자 미국에서 출발해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을 나라의 도심 호텔로 혼자 와야했던 그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내가 해외여행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데 다들 어떻게 다닌다냐요.....) 내가 백번을 반복해도 반신반의하던 충고: "일본 사람들 영어 못해. 우리가 묵는 호텔 애들도 분명 못할거야. 98% 확신해." 실제로 호텔에 도착해보니 직원들이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당황을 하긴 했던 모양ㅋ 여튼, 나리타 공항--고속전철 1시간->우에노 시내--도보20분-->호텔이란 동선을 구글맵 street view로 일일이 도보 거리 사진까지 확인하고 무사히 도착한 그에게 경외의 박수를 보냈다.





첫날 호텔에서 상봉하기 전 투어스케줄로 다녀온 모리타워에서 보이는 동경 야경 + 도쿄타워. 사실 이 야경을 같이 즐기지못한단 사실이 속상해서 구경하는데 집중도 못했(던 것 같)다. 오죽하면 하루종일 다니고 첫 사진이 전망대에서였을까! 더군데나 새로 산 카메라 사용법을 모르겠어서 정말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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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독교인이 심각한 우울증을?
우울증은 생물학적 질병, 전문의에게 진단·처방받아야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6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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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을 신앙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말씀에서처럼 기쁘지 못하면 죄를 지은 것마냥 여겨지고 또 여기는 우리의 패러다임. 감정과 영성의 관계는 무엇이기에 우리는 막연히 당연하게 믿음으로 극복 가능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던 것일까.


세상에서 감기 걸리면 의사 찾아가듯 우울증도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는 analogy를 보면 당연하다며 늘 끄덕거렸으면서, 아직도 나 자신을 혹은 남을 근본주의적 시각으로 판단하게 되곤 하는 모순. 감기 걸린 사람이 병원에 간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자라고 정죄하지 않는데. why not vice versa?


우울감과 우울증의 경계는 어디인가. 어찌하여 우울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을 하고있거나 섣부른 자가진단으로 인한 허세행위라고 보여지기도 하는가.


심리치료 밑 정신과 상담은 부르주아들이나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편견, 혹은 진실. 우울할 시간이 어디있냐며 바쁘게 삶을 돌려가며 질병을 무시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치유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이 맥락 가운데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기질적으로 우울함이 상당히 친숙한 나에게 이번 '일'과, 이 기사가 던져주는 무수한 생각들과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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