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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닫습니다

from hur cosmos 2017. 12. 21. 23:29

치기어린 지난 20대, 특히 결혼전 싱글시절 20대의 고민을 나름 많이 털어냈던 블로그를 닫으려고 합니다.  

글을 쓰지 못하고, 글을 쓰고싶은 만큼 마음에 윤기 혹은 습기가 차지 않아 나에게는 노화가 이렇게 오는 것인가 매우 아파한 2017 하반기였습니다. 그치만 아주 아주 조금씩이지만 머리에 피가 돌고, 가슴에 피가 돌고, 마음에 피가 도는 것 같아요. 아픔이 기쁨이 자극이 되고 있어요. 다시 쓰고 싶어요. 허공에만 흥얼거리던 내 안에 있는 것들에게 모양을 주고싶어요. 


이 블로그에 남겨진 글들 중엔 더 이상 나 자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생각들도 많고 그래요. 그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지난 20대에게 작별하고 이제 진짜 30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사 준비를 합니다. 새로운 나를 맞기 위해 월동을 준비합니다. 어차피 구독자따위 많지 않은 곳임을 알지만 나 자신에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 새 거처가 궁금하면 따로 연락 주세요. 사실 아직 준비가 된 건 아니지만, 누가 놀러오고 싶어하는 지는 궁금하니까요. ㅎㅎ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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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from careless whisper 2017. 12. 19. 09:22

다시는 이곳에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직 이사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어딘가에라도 토로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휴면계좌를 풀었다. 

애도하는데에는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머릿속에 드는 생각들을 나열하고싶다. 두서없이. 아마도 예의를 갖출 여유따위는 없이.


우울한 연예인에게 묘한 선망과 동경과 동질감을 갖는 나다. 그들을 보며 미친듯이 오글아들어 하다가도 그들의 예술적 승화를 소비하는 짜릿한 맛이 있다. 


적어도 내가 접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는 지극히 4번스런 사람이었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머쓱해하면서도 기꺼이 숙명으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본인이 정해놓은 선에서만 망가지되 마지막 한 줄의 품위를 놓치 않는.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고 자신 때문에 기뻐하는. 


그가 속한 그룹도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그 무엇보다 한 명의 아티스트 그리고 디제이로써의 그를 너무 사랑했다. 

섣부른 위로에 치를 떠는 사람. 본인이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남에게 주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쓴 사람.

본인이 종종 내뱉던 사상이 정말 진실이란 듯 고스란히 그의 소품집 노래 가사에서 접하곤 했다. 


뮤즈 사건으로 시끄러울 때도 난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물론 그땐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도 훨씬 전이었지만 말이다. 

아직도 그가 대응한 방식에 찬사를 보내고싶다.

다른 크고 작은 논란거리들을 가지고 그의 존재 자체를 커버 치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반성할 줄 알고, 배울 줄 알고, 조심스럽고 배려심 깊은 인간이였다. 

멀리서 바라보는 나에게 있어선.


하루종일 나름의 추억팔이를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솔로곡들을 끊임 없이 들었고 중간중간에 그룹 대표곡들을 들었다. 일인극은 내가 고등학교때 지독히도 좋아했던 첫사랑을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였다. 그 첫사랑이 정리된지 이미 몇년이 지난 후에 나온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10대 시절의 아련함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감상에 빠지고 싶을 때 찾아듣곤 한다. Suit up은 가장 최근에 들은 그의 솔로곡이다. 첫 번째 정규의 마지막 곡. 이렇게 센슈얼한 곡을 내가 사랑하게 되다니. 그치만 인트로를 듣는 순간 홀려들어가듯이 반해버린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다. 


소품집도 들었다. 처음엔 듣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왜냐하면 덜 꾸며진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앨범이니까. 라디오에서 나랑 다른 시청자들이랑 나눈 이야기와 그의 철학과 그의 마음과 찰나의 감정들이 담겨져있으니까. 그치만 그를 기억하고 애도하고픈 사람들이 소품집만큼 찾아듣게 될 앨범이 또 있을까 싶다. 


나인언니 인스타에 그의 유서가 올라왔다. 처음 부고 소식을 접하고 기억난 사람 중 하나이다. 진짜 웃기다. 내가 그에 대해 무얼 안다고. 그래도 내가 떠오를 수 있는 그의 인맥들을 상상해봤었다. 


유서가 뜨기 전 아는 동생이랑 짧게 가슴 먹먹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마음이 종종 힘들고는 하는 동생. 공황이 오고는 해서 약을 먹는 동생. 


"아무도 제대로 몰라줬을거같다는게 너무 속상하네요" 라는 말에 내가 대답했다. "원래 우울감을 뿜던 분이라. 주변도 내성이 생겼던 게 아닐까 궁예질도 해보는데. 가끔 이렇게 가버린 사람들 보면 누가 어떻게 알아줘도 결국 가버리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들어서 또 나혼자 땅굴파며 먹먹해진다"


이렇게 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쉽게 내뱉은 말이지만. 질타받을 수 있는 표현을 썼을 수도 있지만. 나인언니가 올려준 그의 유서를 보니 어느 정도는 맞았던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결국 혼자였던 건 맞지. 그의 깊은 아픔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 따위는 없었겠지. 그치만 하나 다행이라 말할 수 있는 건, 도움을 꾸준히 청했었고 그의 속내를 최대한 주변과 나누려고 했고. 극복하려고 했고. 이겨내고싶어 했고. 단순히 노력해줘서 고맙다라기보단.. 혼자 끌어안아야 했었겠지만 그래도 혼자 하지 않으려고 끝까지 애 써줘서 고마워. 남은 사람들의 죄책감이 무슨 대수겠냐만은 죄책감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가줘서 고마워 이 다정한 사람아. 나인언니가 써준대로 혼자 있다가 가지 않아줘서 고마워. 그 시간을 더 지연시키지 못해서 너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고 아파할 사람들이 수두룩 할텐데, 넌 나름 그 아픔을 덜어주고 간 것만 같아. 그런 다정함이 더 아리고 아프다. 


정작 위로가 필요했던 건 자신이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모해가며 수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위로를 두고 가준 종현아. 


나도 태생적으로 행복을 잘 누리지 못하는 류의 사람이야. 행복하고싶어서 몸부림 치는 사람이야. 

내 인생의 목적은 행복도 자아를 찾는 것도 아니라며 나의 신앙을 가지고 자위하고는 하지만,

나도 결국엔 나 때문에 가장 많이 힘들어하고, 나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시간을 연명하는 류의 인간이야.


최근엔 우리 남편도 인정했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나에게는 있는 것 같다고. 내가 가진 아픔과 슬픔은 큰게 아닌 것 같은데도 이렇게 나를 조여. 나의 우울감을 증명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어. 나의 슬픔이 "슬픔"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 내 이야기를 부풀리곤 해. 엄청 부풀려놓아 이야기 한 후엔 혼자 쿨한 척 해. 그렇게 남들에게 걱정을 끼치며 살아. 그래서 없는 드라마도 만들게 돼. 


어쩌면 남들을 이해 시키기 위함이 아닌 것 같아. 나를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인 것 같아. 슬퍼할 만 한 것. 우울해할 만 한 건덕지를 찾아내는 거야. 이유없이 슬프고 아프고 우울할 수 있는데 말이야. 진짜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말이야. 그렇게 부풀리고 나면 고독함이 더 커져서 묘한 우월감과 자괴감이 동시에 찾아와. 더 고립된 느낌이 들고 더 이해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가는 기분이 들어. 혹시 너도 그랬니. 


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우리의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거라면 있는 힘껏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을 때려붓고싶다. 탓 하지 말아달라 했지만, 왜 떠났냐고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우리마저도 결국엔 괜찮다고 해줄 것만 같은 종현아. 우리가 아무리 붙들어도 왠지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났을 것 같다는 망측한 생각이 솔직히 들기도 해. 옳았다, 그럴만 했다 그런 말은 못하겠어. 그치만 오늘만큼은 네 아픔을 1/1000 정도는 아는 척 해도 될까. 이게 나 나름의 애도 방식이야. 이렇게라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너의 노래를, 목소리를, 네가 쓴 글을, 라이브 할 때마다 플랫 될 까봐 걱정되던 그 순간마저도 많이 좋아했어. 늘 동의한 건 아니였지만 너무 멋진 사람이었어 넌 나에게. 그런 우리의 기대가 너를 더 힘들게 했겠지 분명. 나를 대중을 만족시키지 못했어도 수고했어. 그래도 너는 훌륭했어. 애 많이 썼어. 너무 책임감 있게 살다 가버렸구나. 우리한텐 도망 쳐도 된다고, 내일로 미루면 어떠냐고 말해주었던 네가. 고생 많았지. 그래도 네 노래에 너 자신도 위로를 받는 순간이 있었다니까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보고싶을 거야. 성장하는 너를 보지 못해 아쉽지만. 함께 늙지 못해 허전하지만. 네가 산 청춘이 내 청춘을 떠올리게 해줄 거야. 청년의 네 삶이 많은 사람을 울고 웃고 달리게 만들어 줄거야. 나에게도 그래줬듯이.


안녕. 이젠 푹 쉬어. 애 많이 썼으니까 이젠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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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from survival diary 2016. 11. 10. 01:29

너무 빡이 쳐서 뭐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비가 줄줄 내리는 가을날의 워싱턴 디씨의 아침.


무언가를 읽으면 읽을 수록, 나 자신을 토닥이려고 하면 할 수록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벽을 봐도 눈물이 나 견딜 수가 없다. 


늘쌍 생각해왔다. HRC는 DJT같은 새끼를 경쟁자로 두기엔 아까워도 너무 아깝다고. 처음부터 그녀를 지지해왔기에 "ㅋㄹㅌ은 아니지만 ㅌㄹㅍ는 더더욱 아니잖아" 라는 비교를 하던 사람들의 뒷통수를 다 후려치고싶었던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녀는 이따위 비교를 deserve하는 그릇이 아니라고. 


그녀가 목이 쉬도록 외치고 다녔던 것 처럼, 그녀는 모든 미국인 - 깡촌, 백인 사회, 꼴보수, 미국이란 나라의 방향성에서 외톨이가 되었다고 느끼는 자들의 -의 대통령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이상이자 목표이지. 그래 그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대통령을 뽑은 거다. 그것 뿐이다.


난 중계를 끝까지 보지 않고 힘들게 힘들게 잠이 들었다. 이걸 다 보고 지고 잠을 못자느니 지금이라도 자는게 낫겠다 생각이 들어서. 잠에서 깨면 이 악몽이 끝나있기를 울면서 기도하며 잠들었다.


난 이 나라에서 이민1세의 길을 걸어가고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경제 위기의 덕을 보아 취직을 했고 취업비자를 쉽게 받았다. 시민권 내지 영주권을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미시민권자하고의 결혼인데 그런 운마저 내게 돌아왔으니.


더 똑똑해지고싶다. 나의 잘남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싶다. (물론 그런 잘남따위 지금의 내겐 손톱만큼도 없다) 멋진 여자가 되고싶다. 약자를 위해, 억압받는 자를 위해 싸우고싶다. 내가 희생하고 손해보는 일을 감수하더라도. 그녀는 그런 의지에 불씨를 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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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만 draft를 써놓고 더 고치고 발행하려다가, 그런 날 따위는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footnote를 덧붙이고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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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싫어

from very moment 2016. 7. 16. 05:46

완전 싫어. 매일 다른 입고 오는 것도 싫고. 기사가 열어주는  타고 뒷자석에서 내리는 것도 싫고, 구김새없이 환한거 그게 제일 싫어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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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가지고 다니는 usb속에 들어있던 노트.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이건 아마 상속자들에서 박신혜가 크리스탈을 향해 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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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6

from hur cosmos 2016. 4. 19. 03:40

열달 넘게 준비해온 여행을 다녀왔다. 내 첫 유럽여행이고, 내 첫 장기여행이고 신혼여행으로 간 칸쿤을 제외하고는 첫 해외여행이다. (물론 일본, 미국, 한국은 제외)


여행 끝무렵 그리고 다녀오고나서의 일상은 엉망진창이고 울고싶은 일 투성이지만 하나 긍정적인 변화가 내게 생겼다면 다시 무언가를 끄적거리고싶은 욕구가 약간은 회복되었다는 것. 결국 이 욕구라는 것은 새로운 input이 내 사고와 감정을 trigger해야지만 튀어올라오는 것일텐데, 그간 내가 새로운 input을 무의식중으로 거부해왔었나? 싶을 정도로 넘쳐흐르는 생각과 감정의 호수 속에서 지난 한 주를 살았다. 물론 그 짧은 시기에 여러 사건사고도 있었다만.


끄적거리고싶은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별개지만 어찌됐든 휴먼계좌로 돌아가있던 티스토리에 다시 로그인은 했으니, we'll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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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from hur cosmos 2015. 11. 26. 02:04

어젯밤에 홀로 집에 있으면서 손 빨래를 하는 중 내 머리와 귓가에 "청춘"이란 노래가 계속 맴돌았다. 어차피 재미있게 볼 것을 알았으나 초반 나의 관심을 끌지못했던 응팔을 다 따라잡았기 때문이겠지. 호돌이 해에 태어나 팔팔이 드디어 이렇게나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서도 80년대말은 물론 90년대 초반 서울에 관한 기억이 전혀 없는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공감보다는 드라마가 파는 추억을 뭣모르고 사고는 흐뭇하게 관람하는 시청자 한 명일 뿐이었다. 옛 시절을 떠올리는 일이 아주 없던 건 아니지만 잠길 추억이 없는 나는 상대적으로 무덤덤하게 봤었다는 것이다.


근데 갑자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생각이 나서. 가사를 유심히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김필이 부르는 이 노래의 멜로디를 상상하는 것 만으로 그렇게 구슬플 수가 없었다. 


아빠 하면 이야기 보따리를 한 둘은 펼칠 수 있는 나지만, 그를 떠올리며 가장 먼저 수면 위에 오르는 나의 '감상'내지 '인상'은 부도덕하고 불성실하고 무책임했던 가장도 아니며, 말 그대로 찬란한 것을 잃어버린 인간이다. 


중학교인가, 여튼 십대 시절, 부모의 separation이 내 안은 물론 가족들 사이에서도 공식화 되기 조금 전, 일본에 홀로 있던 그는 좇기는 신세가 되었었다. 그 소식을 처음 접했던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의 생명도 건강도, 금전 상황도, 그를 그 상황으로 몰아간 자도 아니고 그가 버리고 떠나야 했던 집에 있는 물건들이었다. 아빠가 아끼던 음반들. 많지는 않았으나 늘 그자리에 있었던 책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쳤던 전자 피아노.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그리고 유년기 시절 추억은 대부분 아빠와 함께 쌓았기 때문에 내 안엔 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유전의 힘을 무시할 수 없겠으나 이건 교육의 힘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나에게 온갖 스포츠를 관람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준 것도, 컴퓨터를 다루는 법을 알려준 것도, 게임을 포함한 온갖 전자기기를 제공해준 것도, 나와 함께 TV를 봐준 것도, 파바로티를 알려주고 조용필과 송창식을 언급해준 것도 모두 모두 아빠였다. 고상한 취미 따위 가질 시간 없이 살아온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그가 내게 물려준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에서 송혜교가 맡았던 정준영이 자기 아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이에게 보들레르를 읽어주며 시처럼 인생을 살라 하셨던 교양 있는 아빠. 드라마 주인공의 아빠와 나의 아빠는 전혀 전혀 다른 인물들이지만 그 설명 속에서 내가 아빠를 향해 가진 자부심과 애정의 모양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최근에 오랜만에 아빠 이야기를 한 탓도 있겠지. 그분과의 대화로 나는 위로를 얻고, 그 분은 뭔가 단서를 찾는 듯한 인상이 있었다. 외동딸은 가진 아빠로서, 그리고 나와 MBTI 및 에니어그램 성향이 같은 아내 분은 둔 남편으로써. 그리고 응팔이란 드라마, 그리고 그 노래까지 겹쳐져 이 사단(?)이 난 게 아닌가 싶다.


아빠는 어쩌면 나만큼은 아까워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가 버릴 수 밖에 없던 그 많은 것들을.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런 것을 나름 즐기며 살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은? 그가 살아온 세월을 보며 남들은 욕을 하고 비난을 하고 혀를 치겠지만 나만큼은 적어도 나만큼은 그걸 인정해주진 못해도 이해하고 싶다는 건 자만일까. 그치만 그런 거창한 '평가'를 그의 입으로 들을 수 있을까? 우리 사이에 그런 시간이 허락되어 있을까? 그가 그걸 객관적으로 논할 수 있는 정신이 아직 있을까? 


지나가버린 세월을 두고 져버린 청춘을 두고 아빠는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나 있을까? 나 혼자 엉뚱한 걱정하는 거라고 자명되었음 좋겠다. 김창완은 이 노래를 아기 돌 때 지었단 이야기가 있던데, 그의 청춘은 얼마나 찬란했기에 싶다. 아 청춘의 무게가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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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ful prayer

from careless whisper 2015. 10. 28. 02:45

적절한 말과 위로보다는 필요한 말을 건네줄 수 있었으면 하고, 거기엔 나의 개인적 감정과 억한 심정이 섞이지 않기를 바라본다. 당장은 그 의미가 전달되지 않더라도, 상대를 서운하게 만들지라도, 내게 몇 남지 않은 끈을 나 스스로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상처받지 않는 마음을 내게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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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행위

from careless whisper 2015. 7. 31. 22:46


내가 생각하는 것을 글자로 옮겨주는 기능이 빨리 실용화 됐으면 하곤 한다. 꽤 오래전부터 바라왔던 것 같은데 아직도 안나오네? 그게 가능했다면 나의 생각을 더 잘 적어놓을 수 있을텐데. 나의 감정과 그때그때 느낀 것과 생각들을 더 저장하고싶은데, 흐르게 내비두지 않고 기록할 수 있을텐데.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정리든 사색이든 창작이든 간에 펜을 들거나 자판 앞에 앉아 직접 시간과 노동을 들이는 사람에게만 그 수고를 감안하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행위인 걸지도. 7/24/2015


아니면 대필을 고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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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


장강명 -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읽게된 계기가 조금 웃긴데, 하루 이틀의 간격을 두고 랜덤한 두 사람이 이 책을 언급하는 걸 보고 기억에 인풋되어버려서 다른 책을 주문하며 무료배송을 받귀 위해 막판에 장바구니에 넣고 구매하게 된 책. #이렇게_편하게_읽어내린_한국_소설은_처음이얏 #라고_평소_독서량이_매우_적은_내가_말한닷


읽는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 계나의 마음과 말에 '맞아 맞아'라며 맞장구를 치면서도 실상에서는 그녀의 주변인물들 처럼 반응을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변인들을 바라보는 계나의 관점에 감정 이입이 되지 않고 묘한 괴리감을 느낀 것은, 아마 나는 계나가 하는 고민을 몸소 해보기도 전에 그녀가 한 선택 위에 나 자신을 놨었기 때문 아닐까ㅋ 


계나가 이야기한 행복론에 동의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과연 그 끝에 있는 건 정말로 행복인가 싶다. 기회가 제공되는 환경과 애티튜드, 그리고 인생을 둘러싸는 수많은 시선들과 세계관들의 상관관계를 잠시나마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chaos 안에 허덕이는 청춘 여기 한 명 (새삼) 추가염.



김민정 - 엄마의 도쿄: a little about my mother (효형출판)


트위터를 계기로 알게된 도쿄에서 글 쓰며 육아하시는 분께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쓴 에세이. 출판된지 1년 가까이가 흘렀는데 이제서야 손에 넣어 읽게 되었다. 도쿄, 신주쿠, 부모의 애인, 심야 노동, 카페 르누아르 등 친숙한 키워드들을 이미 접했던지라 읽으면 공감이 많이 될 것 같단 생각을 했었다. 막상 책을 열어보니, 당연하게도... 작가와 작가의 엄마의 삶은 내가 경험한 것과는 무엇하나 닮은 구석이 없었지만, '만나서 너무 반갑다' 라는 인사를 건내고싶은 책이 되었다. 엄마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이라는 가벼운(?) 표현을 뛰어넘는 유대감이 형성되는 책인 것 같다.


(개인적 여담) 나에게 도쿄는 사실 아빠의 도시이다. 그만큼 일본에서 함께 보낸 시간과 기억들은 엄마보다는 친 아빠의 얼굴로 가득차있다. 신주쿠'구'에 살았던 우리는 책에서 언급된 곳곳을 누비고 다녔을 거다. 어릴 때이니 장소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진 않지만. 그도 그럴 것은, 우리 엄마는 밤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셨었으니까. 지금의 내가 해석하기에 도쿄는 우리 엄마에게 다시는 돌아가기 싫을 곳일 법도 한데, 우리 엄마는 종종 일본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곤 하셨다. 치안적으로 서울이 도쿄보다 더 무섭다 하셨을 땐 정말 이해가 안갔었다. (이제는 오히려 납득이 가지만..)


다 큰 어른이 되어 자신의 부모를, 그것도 한 여자가 자신의 엄마를 기억하고 묘사하는 방법은 이리 아릴 수 밖에 없는건가 싶어 서글퍼졌다. 책을 읽으며 자꾸 먹먹해질 수 밖에 없던 건, 책을 읽는 내내 나 또한 '우리 엄마의 도쿄'와 '우리 아빠의 도쿄'를 써내려가게 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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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따위 없는 직딩의 삶이다만, 캠퍼스를 기웃거리며 살다보면 그 사이클에 몸을 맡기게 되곤 한다. 내가 성경공부로 섬기는 캠퍼스가 방학을 한지 두 달정도가 됐다. 그말인즉슨 아침 출근길에 조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하는 qt라 읽고 성경 억지로 흝어보기를 제외하고는 말씀을 스스로 보는 행위를 쉰지도 그정도가 됐다는 것..ㅋ 


분기점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곧 있음 한 살 더 먹기 때문이 아니라... 이번 주말에 아마 내 삶에 좋은 파동을 던져줄 수양회를 앞두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제는 그만 놀고 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허구헌날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말씀을 보지 않는지에 대한 토로와 토론과 잔소리를 늘어놓고 사는 우리 부부인데 우리 남편만큼 진실하고 건설적이지 못하다, 확실히 나의 삶은.


노는 거 좋았다. 많이는 아니지만 책도 읽고, 만화책도 꽤 봤고, 게임도 좀 한 것 같고, 티비도 꽤 봤고. 시간이 남긴 하나보다. 스스로도 이야기했다. 말씀 안보니 넘 편하고 좋다고ㅋ 근데 얼마전 남편이 드디어 말씀 좀 보라고 지나가듯 한 마디 던졌네? 


네네. 슬슬 말씀이 보고싶어지네요.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내딛는데 이정도 시간이 필요해씀다. 두달 놀고 이 허함을 다시 직시하고 튠업 하고싶어진 거면 꽤 괜찮은거 아니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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